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서 진술분석관으로 일하는 A씨는 한 달에 많으면 네 번 이상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닌다. 일선 검찰청에서 아동·지적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분석을 의뢰해 오면 직접 찾아가서 면담한 후 분석하는 게 일이다. 현행법상 이들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내용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조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환경, 심리 등을 분석하려면 어느 지역이든 직접 가서 들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만든 보고서를 갖고 분석관 3명이 모여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결론 내야 한다.
A씨를 비롯한 진술분석관들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한다. 피해자들이 당시 기억을 꺼내는 과정의 고통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A씨는 “진술 분석관들끼리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나면 ‘그의 정신적 짐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 같다고 한다”며 “피해자의 녹취를 풀고 분석보고서를 쓰다 보면 글이 담고 있는 사건의 무게가 누르는 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공무원이 아니다. 몇 년째 무기계약직(공무직)이다. A씨를 비롯해 대검 진술분석관 인원의 75%가 공무직이다. 20일 대검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검 과학수사부 산하 법과학분석실에 소속된 진술분석관 11명 중 정규 인원은 전문 연구사 1명과 일반 수사직 공무원 2명(7급 1명, 8급 1명), 총 3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공무직이다. 인원 수도 줄어들고 있다. 진술분석관의 수는 2013년 14명에서 이듬해 13명, 2015년엔 12명에서 지난해 11명으로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중요성과 노동강도만큼 제대로 된 처우를 받기는커녕 인원이라도 늘면 다행인 실정이다.
반면 이들이 다루는 아동·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은 계속 늘고 있다. 진술분석관들은 지난해 아동·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 중 291건에 대해 피해자의 진술분석을 의뢰 받아 소화했다. 7년 전인 2013년에 120건을 처리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2.43배나 늘었다. 다만 한 사건에 진술분석관 3명이 달라붙어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 사건 부담은 훨씬 더 많다.
지난해에도 공무직 진술분석관 1명이 사직했으나 아직 충원하지 못했다. 대검 안팎에선 충원에 애를 먹는 이유가 좋지 않은 처우에 있다고 말한다. 대검 관계자는 “퇴사하지 않는 이상 고용은 보장되지만 신분의 한계로 승진을 통해 커리어를 쌓을 기회가 없다”며 “성과급도 지급되지 않고 학술대회 등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해외출장도 보내줄 수 없어서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A씨는 “법정에 진술분석관으로 출석했을 때 정규직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판사부터 전문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법정에서는 진술분석 보고서의 내용만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술의 신빙성 분석 결과와 법원 판결이 일치하는 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이들은 전문성을 인정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검에 편제된 진술분석관 모두 적어도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다. 이들은 퇴사하고 나서 법원의 가사조사관이나 다른 민간 업체로 이직하기도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아예 다른 직업을 택하기도 한다. 최선희 대검 진술분석실장은 “처우가 좋지 않은 걸 다들 알고 있다 보니 진술분석의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서 모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대검에선 매년 진술분석관에 대한 처우개선과 증원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대검 전반의 정원을 늘리는 것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술분석관도 예외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주민철 대검 법과학분석과장은 “아동과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진술 분석은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핵심적 과정으로 업무 전문성과 연속성, 결과의 책임성을 위해 법적인 신분 안정이 필요하다”며 “경찰에서 수사한 사건도 다시 분석하기 때문에 검·경 수사권 분리와도 상관 없는 사안인데 제대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