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현대상선(011200))이 7,200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CB·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를 발행하며 운영자금 조달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해운업계가 ‘돈맥경화’에 빠진 가운데 자본을 확충하며 본격적인 ‘내실 다지기’에 나선 것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HMM은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를 대상으로 7.200억원 규모의 무보증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고 지난 17일 공시했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각각 3,600억원씩 CB를 인수하는 것으로, 표면이자율은 3%이다. HMM의 선택에 따라 발행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만기를 30년 연장할 수 있다.
HMM은 수혈받은 자금 중 4,000억원을 선박투자, 친환경설비투자, 기기투자 등 시설 자금에, 3,200억원은 연료비와 용선료 등 운영자금에 각각 쓸 예정이다. HMM은 이달부터 유럽 항로에 투입될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과 내년에 건조가 완료되는 1만6,000TEU급 8척 등을 채울 컨테이너 박스 4만8,980대 임차를 위해 1,143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HMM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재도약에 필요한 투자·운영자금을 확보한 것”이라며 “코로나로 인한 해운업계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외 화주들에게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MM의 자본 확충은 세계 해운업계가 물동량 감소와 유동성 문제로 신음하고 있을 때 나온 것이라 의미가 더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십년간 유지되어 온 힘의 균형이 깨지고 ‘옥석 가리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기회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해운업계는 코로나로 인한 수요 충격으로 유동성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2월 선적분에 대한 결제가 시작되는 3월 말~4월 초부터는 결제에 현금 흐름에 문제가 있는 업체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촉발 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싱가포르 선사인 PIL(Pacific International Lines)은 최근 현금흐름 문제로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12척의 선박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HMM은 코로나 충격에도 이번 1·4분기 실적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배재훈 HMM 사장은 4월 사보에서 “1·4분기는 실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목표치를 조금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순조롭게 물량이 공급되고 미국과 유럽 지역의 소비가 유지된다면 이번 위기 상황을 큰 충격 없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초 목표했던 3·4분기 영업이익 흑자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 배 사장은 “당장 2·4분기에 영업 적자를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3·4분기 정상화를 조심스럽게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HMM은 해운업계 전체 물동량이 20~30% 줄어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통한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2만4,000TEU 초대형선의 경우 5,000TEU 가량만을 HMM이 소화하고 나머지는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에 빌려준다. 동맹 선사인 하팍로이드나 ONE이 대형선 발주에 나서면 선복을 돌려받을 수 있다. 빌려주는 선복량이 더 많은 구조가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는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HMM의 한 관계자는 “HMM의 영업 역량이 커지면서 슬롯을 채우면 이익을 더 확보할 수 있고, 내년에 1만6,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인수하면 슬롯 비용은 더 낮아져서 경쟁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