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파괴에 대한 관심…‘무임승차자’ 응징심리도 한몫= 사람들이 불륜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금기’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형법상 간통죄는 지난 2015년 폐지됐지만 결혼과 가족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규범이다. 불륜 드라마의 인기 원인도 여기서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면서도 결혼, 가족의 의미를 물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부터 불륜 콘텐츠가 많이 나온 것”이라고 평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불륜은 결혼으로부터의 일탈”이라며 “불륜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해소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의 불륜엔 사람들의 지탄이 따른다. 곽 교수에 따르면 이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응징 심리’다. 사회적 규범은 구성원들 모두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지켜갈 때 유지될 수 있는데 불륜은 이 대열에서 혼자 이탈하는 행위로 인식된다는 의미다. 더불어 곽 교수는 “인간은 배신을 가장 힘들어 한다”며 “현실의 불륜은 ‘배우자의 배신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 피해자에 이입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 분석했다.
◇나라마다 다른 불륜에 대한 인식 차…한국은 엄격·프랑스선 관대= 불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2013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40개국을 조사한 설문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에서 ‘불륜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81%에 달했다. 40개국 평균도 77.9%나 된다. 불륜이 부도덕적하다는 인식은 세계 공통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불륜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비율이 47%로 가장 낮았던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그 다음으로 낮았던 국가는 독일(60%)이었다. 게다가 설문에 응답한 프랑스 국민의 40%는 ‘불륜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어떤 이유에서 나오는 걸까. 서울 소재 사립대의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가족주의’보다 ‘개인주의’ 정서가 강하다”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분위기가 크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1994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당시 혼외자가 있다는 보도에 “사실이다.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또 2010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영부인 카르라 부르니가 각자 서로 다른 상대방과의 불륜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에서는 동거 커플, 한부모 가정도 결혼 부부와 똑같은 혜택을 받는다”며 “혼외관계를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는 이러한 사회보장제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파탄주의’ 도입 목소리 속 간통죄 부활 주장도= 전통적 가족관이 희미해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불륜에 대한 인식은 변할까. 이인철 법무법인 리 변호사는 “부정적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간통죄가 폐지됐듯 이혼 제도 역시 바뀌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현재 한국의 이혼소송은 일방적 축출이혼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혼인관계를 파탄 낸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따르고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은 혼인관계가 와해될 경우 쌍방 모두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다. 파탄주의가 무분별한 이혼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이 변호사는 “외도 배우자에게 물리는 높은 사후 부양료와 손해배상액 등의 장치로 파탄주의 아래서도 축출이혼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과거보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했고 개인주의가 확산한 만큼 이혼제도도 파탄주의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인기를 끄는 사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불륜행위를 처벌해달라’며 간통죄 부활을 요구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