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경제 전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4월 28일 국무회의)
“우리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4월 27일 대외경제 장관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가 올해 대공황 이후 최악의 성장률 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내수 경기가 얼어붙었고, 주요국 경제 봉쇄로 인한 수출 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경제정책 최고 결정권자들의 ‘입’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닥칠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메시지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왔고,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와 민생이 전례 없이 어려운 시기”라고 했습니다. 최근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도 이런 위기감이 잘 드러났습니다. 당국자들이 쓰는 단어 하나하나는 국내 경제주체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들에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결코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습니다.
사실 코로나19의 습격이 본격화한 연초부터 대내외적으로 역대급 경제 위기 경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상황 인식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모두 ‘비상경제 시국’ ‘위기 상황’ 정도의 비교적 절제되고 온건한 표현을 썼을 뿐 최근처럼 ‘엄청난 충격’ ‘전시 상황’과 같은 감정적이면서도 위협적인 메시지는 내보내지 않아 왔습니다.
분위기가 돌변한 것은 4·15 총선을 즈음해서였습니다. 총선 이후로 최고 당국자들이 우리 경제가 처한 최악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성장률과 수출과 소비 등 주요 거시·실물지표들이 더 큰 폭으로 악화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치적 함의가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정부 여당은 지난 총선에서 ‘경제 심판론’을 경계해왔는데, 총선이 끝났으니 이제는 보다 냉정하게 어려운 경제 상황을 전파해도 된다고 봤다는 것입니다. 경제 위기를 아무리 강조해도 이제는 정치적으로 불리할 게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태도 변화의 또 다른 배경으로 방역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방역 성공의 가장 큰 열쇠는 투명함에 있다”면서 “방역 상황을 전 국민에게 솔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많은 신뢰를 얻은 만큼 경제 분야에 있어서도 상황 인식을 보다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재부 차관을 비상경제 중대본의 대변인으로 세워 매주 경제 상황을 브리핑하도록 한 것도 결국 방역 선봉인 질병관리본부의 일일 브리핑을 ‘벤치마킹’한 셈입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첫 비상경제 중대본 직후 김용범 기재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4월 수출이 금융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할 것임을 미리 알렸습니다.
정부가 코로나19의 경제 파급 차단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다행입니다. 무엇보다 정부의 경기 판단을 솔직하게 알리고, 대응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해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정공법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정책 대응입니다. 소비를 되살리고,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돈을 뿌리고 찔끔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공법이 아니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급조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 정부 들어 가중된 기업 부담을 덜어 투자를 늘리고, 이를 통해 경기 선순환을 일으키는 정공법을 써야 할 것입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