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자금조달을 연기했던 국내 기업들이 다시 회사채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던 대림산업은 최근 조달 일정을 구체화하고 이달 말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수요예측을 진행하기로 했다. 발행규모는 최대 2,000억원으로 오는 6월 만기도래하는 사채를 차환하려는 목적이다.
LG상사·LIG넥스원·한국서부발전·SKC 등도 이달 말 수요예측을 진행하고 6월 초까지 발행을 완료할 계획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매일유업 등도 최근 주관사를 선정하고 조달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만도·SK루브리컨츠·보령제약은 차환용이 아닌 운영자금을 조달한다. 시장의 경색이 다소 풀린 만큼 채권시장안정펀드나 산업은행 등 정부의 지원 없이도 투자수요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회사채 시장은 지난달 말부터 우량등급 중심으로 온기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4월 초까지만 해도 희망금리밴드 상단을 높이 제시하면서 민평금리(민간채권평가사 4곳이 평가한 평균 금리) 대비 크게 높았던 발행금리도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이날 6,00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완료한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1조4,100억원의 뭉칫돈을 끌어모아 발행금리를 민평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전날 1,600억원 규모 수요예측을 진행한 LG CNS도 9,3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으며 흥행해 금리(7년물 기준)를 민평 대비 3bp(1bp=0.01%포인트) 낮췄다.
시장은 1·4분기 실적 발표가 마무리되는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회사채 큰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채안펀드와 산업은행의 매입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상당 부분 불식됐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3~4월 신용채권을 대거 매각하며 현금 보유량을 늘리던 기관들도 하나둘씩 매수를 시작했다. 이경록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4월 초부터 매입을 시작한 채안펀드에 힘입어 AA급 기업들이 다시 회사채 시장에 나오고 있다”며 “A급 기업들도 발행 물량을 줄이고 증권사 리테일 수요와 산업은행 인수를 통해 활로를 찾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부정적’ 등급전망이 붙어 추후 신용도 하락 이슈가 있거나 비우량등급인 기업들에 대한 투심은 여전히 냉기가 도는 분위기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실적 악화가 현실화되면서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채권값 하락 우려가 여전한 탓이다. 정부가 최근 특수목적기구(SPV)를 통해 35조원 규모로 저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구체적인 매입 계획이나 일정 등은 안갯속이다. 이에 따라 이달 말 2,800억원어치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롯데렌탈(AA-/부정적)은 회사채 발행 시기를 저울질하면서 단기자금 조달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