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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뒤안길] 판본 서로 다른 삼국사기

손상된 목판 다시 제작…3종류 전해져

국보 제322-1호로 지정된 ‘삼국사기’. /사진제공=문화재청국보 제322-1호로 지정된 ‘삼국사기’. /사진제공=문화재청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 연구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자료다. 총 50권이 9책으로 이뤄진 삼국사기는 국보 제322-1호와 322-2호로 나뉘어 지정돼 있다. 서로 판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보 제322-1호 삼국사기는 1512년(중종 7년)에 새로 만든 목판으로 1573년(선조 6년) 8월 경주부(慶州府)에서 찍어내 옥산서원에 보낸 것이다. 이 책에는 삼국사기 자체 내력에 관한 두 개의 글이 전하고 있어 특별하다. 그중 하나는 1394년(태조 3년) 4월 경주부사 김거두가 지은 발문이다. ‘삼국사기의 인본(印本)이 오래돼 망가져서 세상에는 사본(寫本)만이 돌아다니고 있다. (중략) 새로 간행할 계획을 세워 계유년(1393년) 7월 간행에 착수했다가 사업을 계속하여 갑술년(1394년)에 일을 마쳤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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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는 1512년(중종 7년)에 경주부윤 이계복이 남긴 것으로 ‘우리나라의 삼국본사(三國本史)와 유사(遺事) 두 책이 다른 곳에서는 간행된 적이 없고 본부(경주부)에 판(板)이 있는데 연대가 오래돼 판이 망가지는 바람에 한 줄에 겨우 4~5자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에는 고려시대에 처음 새긴 목판에서 찍어낸 것과 함께 태조 때와 중종 때 각각 다시 새겨 만든 목판에서 찍은 것까지 세 종류가 그대로 전하고 있다. 12세기 중엽에 처음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삼국사기가 900여년의 세월 동안 겪은 풍파를 알 수 있는 까닭은 그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기록이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선현들의 의지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 아닐까.
/정제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전문위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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