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인 건축주의 의도대로 설계해도 2D 도면으로는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공간이 어떻게 지어질지 감을 잡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공간을 2D 도면이 아닌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3D 공간으로 구현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진우(사진) 어반베이스 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테리어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일반인에게는 집 도면을 읽는 것부터 쉽지 않다. 종이 위에 그려진 집 도면만 보고 소파를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장은 몇 자를 짜야 하는지, 침대 헤드를 어느 방향으로 놓아야 하는지 등 머릿속으로만 구상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 도면을 단 몇 초 만에 3D 공간 데이터로 변환해준다면 어떨까. 또 클릭 몇 번으로 가상공간 위에 가구를 마음껏 배치해볼 수 있다면. 이것이 가능하면 인테리어라는 기술이 전문가의 영역에서 대중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순간이다. 어반베이스는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술 기반의 공간 플랫폼 스타트업으로 건축 도면을 2초 만에 3차원 공간으로 자동 변환하는 특허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회사다.
◇ 프로그래밍과 설계, 둘 다 할 수 있는 길 찾아
건축공학과 출신으로 사회초년병 시절 건축에 대한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을 짓고 싶다는 목표도 있었다. 건축가로서의 꿈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던 어느 날. 그는 문득 ‘내가 과연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까’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하 대표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 건축 설계를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그 사람들과의 경쟁을 뚫고 제가 성공하려면 오랜 기간 무명으로 실력을 갈고닦아 40대 후반은 돼야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는 전자를 택했다.
하 대표가 ‘잘하는 일’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코딩으로 프로그램을 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저한테는 프로그래밍도 재밌고 설계도 재밌었다. 이 두 개를 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아봤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런 업(業)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그 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 이케아 상륙…‘홈퍼니싱’ 가능성 예측
단순히 설계와 프로그래밍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만 창업을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하 대표는 ‘홈퍼니싱(home furnishing)’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특히 어반베이스를 설립한 지난 2014년 당시는 스웨덴의 글로벌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가 경기도 광명시에 ‘한국 1호 매장’ 오픈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그는 “이케아가 한국에 상륙하면 한국 가구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할 것이라고 봤다. 또 당시에는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지 못했는데 몇 년 후에는 충분히 3만달러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는 홈퍼니싱 시장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신규 분양주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하 대표에게 확신을 줬다. 어린 시절을 여의도에서 보낸 하 대표는 ‘겉은 낡았어도 속은 세련된’ 여의도 구축 아파트에서 서울의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당시에도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라 외관은 낡았는데도 안에 들어가 보니 인테리어 공사를 해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그 이질성이 바로 서울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했다. 재개발·재건축이 예전만큼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게 되다 보면 오래된 아파트라도 내부만큼은 새집처럼 바꾸고 싶어하는 니즈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홈퍼니싱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차세대 인테리어 트렌드는 ‘셀프 인테리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반베이스가 설립된 6년 전만 해도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개념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잘 맞아떨어진 예측이었던 셈이다. 그는 “3D 공간을 구현하려면 건축가들이 쓰는 툴인 ‘캐드(CAD)’를 사용해야 했는데, 캐드는 일반인들이 다루기에는 너무 무겁고 어렵다. 홈퍼니싱 시장이 성장하면 가까운 미래에 전문가들이 쓰던 CAD 같은 프로그램들이 대중화되지 않을까 싶었다”며 “클릭 몇 번만 하면 가상의 집 모형에 가구를 배치할 수 있는, 일반인도 다루기 쉬운 3D 툴이 필요할 텐데 아직 그런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기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위기요? 그냥 버티는 거죠”
시장의 트렌드도 읽었고 그에 맞는 기술도 갖췄으니 탄탄대로만 걸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기도 많았다. 하 대표는 어반베이스가 걸어온 길을 ‘백조의 발버둥’에 비교하기도 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흔들림 없이 순항한 것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각종 위기와 난관에 맞서 쉼 없이 발헤엄을 쳤다는 것이다.
그에게 위기 극복의 비법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간단했다. “그냥 버티면 된다”는 것.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좋은 일들과 안 좋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좋은 일이 생길 때까지 버티고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이 훈풍을 어떻게 오래 타고 버틸지를 고민한다는 의미다.
하 대표는 “제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회사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2016년 말 신규투자 유치를 받기 위해 2년 전부터 열심히 노력해 어느 정도 성과도 내고 IR 자료도 공들여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투자사들을 찾아갔는데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이 시작되면서 장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투자사들이 모두 문을 걸어 잠그면서 회사가 어려워졌다”며 “그 시기를 최대한 버텼더니 몇 달 후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정국이 안정되면서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에도 버틸 수 있는 ‘맷집’을 기르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멘탈(mental·정신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돌아갈 직장이 있거나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보이면 그만큼 포기하기도 쉬우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배수진을 치고 문제를 하나둘 해결해나가다 보면 다시 일이 풀리기 마련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희한하게 그러다 보면 또 투자계약이 체결되면서 자본이 메꿔지는 등 좋은 일이 생긴다. 최근에도 그랬다”며 웃었다. 어반베이스는 최근 신세계I&C를 비롯한 4개사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이호재기자
He is...△1982년 서울 △2005년 경희대 건축공학 졸업 △2010년 명승건축그룹 디자인연구원 △2011년 서울건축 건축가 △2014년~ 현 ‘어반베이스(Urbanbas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