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기업들의 ‘중국 탈출’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외국 기업 기술 탈취에 더해 전염병 등 위기에 취약한 중국의 대처 능력도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불신을 키운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을 급격히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R&D 등 핵심 사업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자는 움직임이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 기업 사이에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유럽의회 대중국 관계위원회 의장은 “코로나19로 최근 몇 달간 중국은 유럽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추세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 내 제조공장 이전은 거대 중국 시장 때문에 현실화하기 쉽지 않고 이전한다 해도 국내의 높은 인건비로는 동남아 등 대안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첨단산업은 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경쟁국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인력 수준, 글로벌 신제품의 ‘테스트베드’로 꼽힐 정도로 앞선 소비 시장 등이 한국의 강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역시 규제다. R&D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들이 첨단산업 유치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게 주 52시간 근로제다. 국내에 대규모 R&D센터를 둔 글로벌 기업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한국에서 R&D센터를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스피드’”라며 “시한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성과를 내는 근면성이야말로 국내 연구인력의 차별화된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인력의 지능은 중국·일본이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하지만 글로벌 본사와 시차가 맞지 않아도 어떻게든 협업하고 극복하는 모습에 본사 임원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R&D와 관련해 지난해 주 52시간 근로제의 보완 대책(특별연장근로 인가)을 내놓았지만 “‘국가경쟁력 강화 및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R&D의 경우만 해당하며 ‘일상적인 신상품 등 연구개발’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의 재량과 행정적인 판단에 좌우되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고 사유도 엄격하게 제한돼 기업들이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