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야구의 상징, KBO 부동의 1위 ‘두산 베어스’가 어느 날 갑자기 ‘00 베어스’가 된다면? 야구 팬들로써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요즘 들어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입니다. 124년 역사의 두산이 창사 이래 최대 경영 위기를 맞으며 보유자산 매각에 나섰는데 야구단도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죠.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위기가 찾아오게 된 걸까요? 두산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려야 하는 걸까요.
[영상]124년 장수기업 두산의 위기는 탈원전 때문? 두산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5분만화) /유튜브 ‘서울경제썸’ |
두산그룹의 핵심회사인 두산중공업은 2010년 초반부터 위기의 징후가 나타났었습니다. 회사의 매출이익이 2010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내려앉았고, 수주물량 역시 점점 쪼그라들었거든요. 2019년 말 기준 두산중공업이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은 4조 2,000억원. 그러나 두산의 현금성자산은 10분의 1인 4,647억원에 불과합니다. 국책은행이 1조원을 빌려주기로 했지만 사실 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거죠. 두산중공업은 어쩌다가 이렇게 빚이 많아졌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두산그룹의 위기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석탄화력 발주가 감소했고, 경영위기까지 몰리게 됐다는 뜻이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밑 빠진 자회사들에 물 붓기를 계속 해오던 경영진의 무능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첫 번째 패착은 자회사인 두산건설에서 돈을 크게 떼인 일입니다.
7년 전 두산건설은 ‘위브’라는 브랜드를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국내 주택시장을 공략해왔습니다.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져보겠다고 했던 것이 2013년 완공한 ‘일산 위브더제니스’죠. 59층 230m에 2,700세대. 그야말로 야심차게 준비한 국내 최대 주상복합 아파트였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비싼 분양가, 근처 지역의 미개발 등으로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사람이 없어 대규모 미분양 사태를 맞고 맙니다. 두산건설을 돕기 위해서 모회사인 두산중공업이 보유현금의 95%를 빌려줬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두산건설은 2011년부터 단 한차례도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적이 없는 회사였거든요. 두산건설은 결국 지난해 상장폐지 수순을 밟고 매각까지 염두해두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때 경영진이 냉정하게 두산건설을 포기했다면…위브더제니스를 짓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지요.
또 다른 패착은 2007년의 일입니다. 당시 두산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두산의 눈은 국경 밖으로 향했어요. 내부에서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아예 역량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단숨에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M&A 전략을 쓰기로 한 거죠. 당시 회장이었던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결심이었습니다. 박 회장은 밥캣 인수가 미래 두산의 먹거리를 해결해줄 거라 확신했습니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어떤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3,000억이 들고 10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맨땅에 헤딩하느니 3,000억을 주고 그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사겠다.”
밥캣은 전 세계 소형 건설장비 업계의 최강자인 데다 100년이 넘은 기업으로 업계에서는 두산과 더 좋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또 밥캣과 함께 체코의 ‘스코다 파워’를 추가로 사들이며 두산은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기술을 모두 갖추게 됐습니다. 하지만 밥캣은 인수를 위한 차입금만 49억 달러, 당시 5조 7,600억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밥캣을 인수하는 건 좋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던 거죠. 인수 후 미국발 금융위기로 건설용 중장비 수요가 급감하며 밥캣은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타이밍도 문제지만 인수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지점입니다. 만일 두산이 이때 밥캣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순간일 겁니다.
1896년 8월, 종로에서 시작한 ‘박승직 상점’은 창업주 ‘박승직’이 당나귀 한 마리와 함께 전국을 누린 보부상으로 출발했습니다. 1952년 정부로부터 인수한 ‘동양맥주(현 OB맥주)’를 팔기 시작했고, OB맥주는 국내 맥주의 대명사가 됐죠. 두산은 거기에 코카콜라, KFC, 버거킹, 네슬레, 3M 등 유명한 소비재 산업의 독점권도 따내며 사세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설비투자, 낙동강 페놀 사건, 경쟁업체 추격 등으로 매출이 줄면서 결국 두산은 수익성 높았던 소비재 산업들을 모두 매각합니다. 당시 회장이었던 박용곤 고 명예회장은 “두산이라는 이름이 다음 세대로 가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업(業)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죠. 두산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 변화의 시동을 건 것은 2001년. 당시 두산이 본 미래는 ISB(인프라지원 사업: 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였습니다. 맥주나 콜라를 팔던 회사가 굴착기 같은 장비를 파는 업체로 변신한 것이죠.
당시 두산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지금과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주위에서 “두산이 엄청난 경영난에 빠졌다. 이제 두산은 끝났다”고 얘기했지만 두산은 주요 사업을 통째로 바꾸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기업을 살려냈거든요. 뼈를 깎는 의지로 기업 구조조정의 매스를 든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이는 지점입니다. 20년 전 변화가 절박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냉철하게 기업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겁니다. 124년 우리나라 최고 장수기업의 역사가 어떻게 이어질지 우리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시죠.
/정수현기자·변유림 인턴기자 valu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