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한창 출근 시간인 오전 8시,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과 신세계 백화점 본점 앞에는 각각 150여명의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 4시가 넘어선 시간 부터 시작된 줄은 이미 건물 반 바퀴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속속 긴 줄에 합류하며 줄의 길이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졌다. 대부분 20~30대인 이들은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최근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한 우려에도 거리 두기 없이 바싹 붙어있었다. 일부는 돗자리나 캠핑용 의자에 앉아 있거나 담요를 덮어쓰면서 명품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각 매장별 대기 인원을 파악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14일 가격 인상을 예고한 명품 브랜드 샤넬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날은 가격 인상을 하루 앞둔 시점으로 가격 인상 전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지난 10일부터 이어진 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춰 매장으로 전력질주하는 오픈런(open run) 사태때보다 더욱 장사진을 이뤘다. 백화점 개장 시간 30여분 전부터 샤넬 매장 직원들이 나와 대기를 받기 시작했고, 고객들은 손 소독제를 들고 나온 샤넬 직원들에게 현재 재고 수량을 문의하기도 했다. 후미에 선 일부 고객들은 재고가 많지 않다는 말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대기를 받지 않는 일부 백화점 내 샤넬 매장에서는 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춰 매장으로 전력질주 하는 모습도 보였고, 이 과정에서 일부 고객들은 넘어지거나 고성을 지르며 다투기도 했다. 앞줄에 서 있던 20대 여성 고객은 “경기도에 살고 있어 연차를 내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곧바로 택시를 타고 왔다”며 “다행히 상위권에 들어 안심이 되지만 원하는 상품의 재고가 없을 수도 있어 초조한 감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고객은 “샤넬 가격 인상 전 오픈런이 종종 발생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심한 것 같다”며 “가격 상승폭이 큰 데다 평소 보다 재고가 많이 풀렸다는 말에 사람들이 더 몰렸고, 올해 코로나 19로 해외여행 등을 가지 못하다 보니 이른바 보복소비 등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샤넬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유럽 등에서 가격을 인상했고, 14일부터 한국도 가격을 인상한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샤넬에서는 가격 인상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이날 샤넬 매장 내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지난 12일부터 가격 인상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6개월 만에 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샤넬의 가격 인상률은 17%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인기 상품 중 하나인 클래식 미디엄 핸드백 가격이 715만원 인 점을 감안하면 100만원 이상 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상승폭이 알려지자 지난 10일부터 샤넬 매장은 장사진을 이뤘고, 평일임에도 대기 순번이 폐장 시간까지도 200명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일부에서는 대기 순번까지 판매한다는 글이 중고 물품 사이트에 올라오기도 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샤넬 오픈런 사태는 백화점 매출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신세계 백화점의 경우 가격 인상 소식이 나오기 시작한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3.5% 상승했다. 하루종일 매장 앞에 장사진을 이뤘던 12일은 전년 대비 119.7%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롯데백화점도 12일 기준 74%, 갤러리아백화점도 49%나 매출이 늘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개별 브랜드에 대한 매출 공개는 되지 않지만 이 기간 명품 매출 상당 부분은 샤넬이 차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에서는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오픈런을 초래한 샤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가격 인상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폭 가격을 인상한 것을 두고, 코로나 19로 매출에 타격을 입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가격 인상을 했다는 비판과 함께 가격 인상에 대한 불투명한 정책도 지적하고 나섰다. 또 일부에서는 “재난지원금 사용에 가격을 인상한 골목 상권에 대한 비판은 거세게 하면서 샤넬의 이러한 가격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은 커녕 동조해 긴 줄을 서고 있다”고 샤넬 대란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문제는 샤넬 뿐 아니라 조만간 다른 명품 가격도 인상 될 것으로 보여 명품 대란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 3월 가격을 인상한 루이비통과 티파니, 셀린, 롤렉스 등이 가격을 인상했고, 올해 가격을 아직까지 인상하고 있지 않는 구찌와 프라다, 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들도 곧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올 하반기에는 코로나 19 여파로 인한 수급 문제도 명품 대란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분기 코로나 19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명품 브랜드 공방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공방에서 조금씩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일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로 백화점 관계자에 따르면 “브랜드 별로 FW 시즌 상품 출시전 나오는 프리폴시즌 상품 입고가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며 “보통 5월부터 입고되는 프리폴 시즌 상품이 현재 6월께로 미뤄지면서 기존 메인 컬렉션과 병합해 진열하는 등 임시방편으로 운영되는 매장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샤넬 담당자도 “5월 입고되는 프리폴 시즌 상품이 연기된 상태로 언제 새로운 시즌 상품이 입고 될지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당장 시계 줄 등 소모품 교체와 해외 공장에 보내는 AS는 물론 개별 주문 등은 지난 4월부터 무기한 연기된 상태”라며 “가을 시즌 상품 입고도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 하반기에 혼수 등 상반기 이뤄지지 못했던 명품 구매 수요가 몰릴 경우 또 다시 명품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