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에 ‘글로벌밸류체인(GVC)’ 재구축이 화두다.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을 위한 기업의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 적극 지원 등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찮다. 인건비, 소비시장 접근성 등 최적 효율을 위해 역외로 나간 기업을 모두 한국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촉발된 미중 갈등은 또 다른 불안 요인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세계 경제 상황에 우리 기업과 정부는 어떻게 GVC를 재구축해야 할까. 서울경제는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조철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리쇼어링과 일부 탈중국 움직임이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추 실장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충분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한 리쇼어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본다”며 “자국 경제 부양을 위한 일자리 늘리기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파격적 혜택을 내세워 해외에 있는 공장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기업의 리쇼어링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주 실장은 “저렴한 인건비, 물류 비용 감소를 위해 해외로 나간 기업 중 국내에 돌아올 곳은 많지 않다”며 “내수시장 규모도 작아 기업 입장에서는 리쇼어링으로 인한 플러스 요인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이 많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생산기지의 탈중국 움직임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 회장은 “중국산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배선 뭉치) 공급 중단으로 인한 완성차 공장 연쇄 셧다운에서 봤듯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며 “동남아 각국으로 생산기반을 분산해 부품을 공급하는 등 위험성을 낮추는 행보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리쇼어링 정책으로 한국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자칫 국내 소재 외국계 기업의 제조공장이 본국 회귀를 위해 문을 닫을 가능성도 있어서다. 조 본부장은 “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으로 국내 공장의 생산단가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에 생산공장을 둔 외국계 기업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의 이탈은 결국 일자리 공백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제한적이나마 일부 기업의 리쇼어링을 유도해 일자리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부쩍 높아진 기업 관련 규제의 완화가 꼽혔다. 추 실장은 “해외로 진출한 모든 기업을 불러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지만 노동시장의 경직성, 고임금, 기업활동 규제로 인해 떠난 일부 기업들의 한국 복귀를 유도하는 방안은 가능해 보인다”며 “특별한 추가 지원이 없더라도 주 52시간 근로제 혹은 최저임금 적용의 한시적 유예, 법인세 감면 혜택이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별적인 리쇼어링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 본부장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핵심 공정의 리쇼어링이 결국 관건”이라며 “연구개발(R&D) 조직의 국내 유치를 통한 ‘질 높은 일자리 창출→고급인재 양성→첨단 기업 추가 유치·창업’의 선순환 구조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GVC 재구축 흐름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실장은 “미중 갈등 재부상 등으로 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핵심 기술 개발 등 내부 역량을 높이는 정책을 펴 미중 양국이 한국 기업을 꼭 잡고 싶은 파트너로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