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기업지원대책 집행이 ‘하세월’인 것은 한마디로 경제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기 때문으로 요약된다. 그립이 센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기업지원책은 정치적 고려로 미적대다 총선 이후에야 구체화됐고 관계부처 간 불협화음으로 지원 프로그램이 출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정부는 지난달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 두산중공업에 2조4,000억원을 지원하기는 했다. 그러나 기업지원의 핵심 프로그램인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코로나19 사태가 지난 2월 발발했지만 약 4개월이 된 현재까지도 집행이 안 되고 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물론 정부는 기안기금 설치를 위한 국회에서의 법 개정, 시행령 개정 등으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직후부터 빠르게 대비했다면 기안기금 출범을 앞당길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 산하에 설치되는 기안기금 심의위원회는 다음주 안에 심의위원 구성을 마치고 다음달 중 기업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지원을 시작할 예정이다.
최대 2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저신용등급 포함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손실부담을 정부가 질지, 한국은행이 가져갈지 양 기관이 ‘핑퐁게임’을 벌이고 금융위원회도 중간에서 조율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지난달 22일 출범 계획을 밝히고 한 달이 지난 이달 20일에야 대략적인 프로그램 얼개를 공개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기존 회사채 시장 지원 프로그램이 우량 회사채만 매입해 비우량 등급 회사채 시장은 상황이 안 좋아지는 등 ‘양극화’가 심해져 저신용등급 기업은 자금조달에 촌각을 다투고 있었지만 정부는 책임 회피를 위해 다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매입 기구가 늦었지만 출범을 해서 다행”이라면서도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가 닥쳤으면 한국은행도 과감하게 나서야 하는데 손실을 질 수 없다는 주장에 천착하고 정부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해주다 보니 출범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되짚었다.
문제는 이 기구가 언제 출범할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기구를 운용하는 산은에 5,000억원을 3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출자하기로 했기 때문에 출범도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진행될 수 있다. 21대 국회 임기는 다음달 5일부터이며 이후 원구성 등에서 난항을 겪으면 그만큼 추경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저신용 회사채·CP 매입 기구 출범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보다 코로나 사태가 늦게 터진 미국은 지원책에 있어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은 3월27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CARES Aact’가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이의 일환으로 현재 5,320억달러 규모의 기업지원책을 이미 가동하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저신용 회사채 매입 기구 설립에서 샅바싸움을 하는 사이 미 재무부가 지급보증을 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실물기업 전반의 회사채 등을 사들이는 4,540억달러 규모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올해 말까지 재무부 장관에게 여객 항공사와 관련된 기업,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업, 화물 항공사 등에 직접 대출을 하거나 대출을 보증하는 것을 허가했다.
코로나19 대응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역시 집행이 더디다. 출범 계획을 3월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했지만 첫 집행은 오는 29일로 예정돼 있다. 실제 집행까지 두 달 넘게 걸린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정부가 2·4분기 상황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위기 극복의 주체인 기업에 대한 지원은 빠르게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채안펀드의 운용도 아쉬움이 남는다. 19일 금융위는 다음달 1일부터 채안펀드가 여신전문금융사 회사채 매입 대상을 A+로 확대하고 P-CBO 역시 여전채를 매입하지 않았지만 A- 이상은 다음달 말부터 매입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여전업계에서는 “정부가 정말 시장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나서지 않다가 비우량 여전채가 시장에서 소화되기 시작하자 나섰다”며 “매입 대상을 넓힌 것은 다행이지만 정말 필요했을 때 대응해줬으면 좋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채안펀드는 최대 20조원이지만 지나치게 몸을 사리다 보니 출범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매입한 것은 약 6,000억원 규모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좀비기업이 연명하는 것은 분명히 경계해야겠지만 이로 인해 지원의 핵심인 속도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배 전무는 “기업이 체감하기에 정부 지원책은 속도가 더디다”며 “주저하는 사이 기업 상황은 안 좋아져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