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장기화하고 있는 미중 갈등에 대비하기 위해 자국 경제를 기존 수출 중심에서 내수 위주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생존할 수 있는 내수경제 기반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제13기 제3차 회의 경제계위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국내 수요 충족을 요구하는 등 최근 중국 지도부에서 잇따라 내수경제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우리는 앞으로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발전의 출발점 및 목표점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완전한 내수 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하고 과학기술 및 다른 방면의 혁신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연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디커플링 위협에 대한 중국의 경제전략 대응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게 SCMP의 평가다.
실제로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14차 5개년 계획안은 미국의 첨단기술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성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 후싱더우는 “이는 미국이나 서방세계 전체와의 디커플링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수출 중심 전략에 따라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앞으로는 자급자족에 가까운 경제를 추구할 유인이 커지고 있다고 SCMP는 지적했다.
다만 중국 지도부의 이 같은 내수 기반 경제로의 전환 방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수출 증대를 목적으로 위안화 평가절하 흐름을 보이고 있어 미중 간 갈등은 되레 증폭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26일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을 전일 대비 0.12% 오른 7.1293위안으로 고시했다. 전일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을 0.38% 올려 12년 만에 최고치를 만든 후 이틀째 대규모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이다. 홍콩 국가보안법 논란으로 최근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위안화가 크게 오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올해 위안화가 1월21일 6.8606위안을 저점으로 줄곧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금융당국의 의도적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해 중국은 코로나19 충격에도 4월 수출액을 전년 동기 대비 3.5%나 늘렸다. 반면 수입 가격 인상에 수입액은 무려 14.2%나 하락했다. ‘세계의 시장’을 목표로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말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1월 미중 간 1단계 무역합의에 따라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2017년 대비 2,000억달러 규모의 상품과 서비스를 올해와 내년 2년간 추가로 수입해야 하지만 대미 수입액은 올 들어 4월까지 오히려 26.5%나 줄었다.
한편 중국 정부가 22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업무보고’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한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1.8%’를 목표로 세웠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왕타오 UBS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공개한 2020년 예산안 분석 결과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1.8%로 상정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날 한 콘퍼런스콜에서 밝혔다. /전희윤기자 베이징=최수문특파원 hee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