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법원의 재산명시 결정을 따르지 않는 채무자를 강제구금하는 감치 업무를 경찰에 맡기도록 한 현 제도에 문제점이 없는지 연구에 착수했다. 형사가 아닌 민사집행 업무인 채무자 감치를 일선 경찰이 맡는 게 부적절하다는 현장의 불만이 쏟아지는데다 정작 치안 등 경찰 본연의 업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최근 ‘경찰의 감치 집행규정의 법적 문제점 검토’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연구를 수행할 곳을 곧 선정할 예정이다. 감치 제도와 관련해 경찰청이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이 수행하는 감치 업무 중 대표적인 게 채무자 감치다. 이는 민사집행법 제68조에 따른 것으로 금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채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재산명시 기일에 불출석하거나 재산목록 제출 등의 의무를 위반했을 때 법원 명령을 통해 최대 20일까지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에 수감하도록 한 제도다. 법원조직법의 하위 법규인 대법원 규칙에 따라 법관이 집행을 명령하면 경찰관 등이 감치 대상자를 구치소 등에 유치한다. 경찰을 감치 집행 주체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이 채무자 감치 업무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범인을 잡는 형사사건도 아니고 민사집행 업무에 경찰이 왜 개입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채무자 감치 때문에 경찰 고유업무인 긴급신고 대응이나 치안 업무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연간 3만건 이상의 채무자 감치 명령장이 접수되고 있다.
또 다른 경찰관도 “경찰은 민사사건 전문가가 아니라서 채무자 감치 과정에 대해 감치 대상자에게 일일이 설명하기가 힘들다”며 “감치 대상자가 저항하거나 도주하면 어디까지 유형력을 행사해야 할지 규정도 없어 현장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규칙을 행정부 소속기관인 경찰청이 따를 의무가 있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청은 감치 집행 주체로 경찰이 타당한지에 대해 외부 연구용역을 통해 따져볼 방침이다. 감치 제도의 법리상 문제점은 물론 치안활동 주체인 경찰이 감치의 집행을 수행하는 것이 적정한지, 아니면 관련 부처 담당 공무원이 집행하고 경찰은 행정지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게 타당한지 등을 살펴 적합한 법률 개정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헌법에 따르면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법률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대법원 규칙을 준용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식이 위헌 소지가 있는지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액·상습 체납자를 감치할 경우에는 경찰뿐 아니라 세무공무원이 감치 집행 절차에 협력하도록 법안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채무자 감치 업무는 경찰이 대부분 전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