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추진과 관련해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 국가들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했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중국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법안까지 통과시키자 발끈하고 나섰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홍콩 보안법 추진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홍콩 주민의 영국 시민권 취득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법이 시행되면 라브 장관과 함께 홍콩 주민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라브 장관은 현재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소지하고 영국에 입국하면 6개월을 체류할 수 있지만 이를 12개월로 연장해 직장 업무와 학업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영국이 검토 중인 대상은 지난 1997년 홍콩 반환 전 영국 정부가 발급한 BNO 여권을 보유한 31만4,000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에 대해 영국 시민권 취득을 용이하게 하거나 체류기간을 연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앞서 영국은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의결하기 전에도 캐나다·호주와 함께 “관련 법 도입을 깊이 우려한다”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영국은 홍콩 보안법이 1984년 양국이 체결한 공동선언을 직접적 위협에 놓이게 한다고 경고했다. 영국과 중국이 체결한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로도 50년 동안 홍콩이 현행 체계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등의 ‘일국양제’ 기본정신을 담고 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일국양제 원칙과 법치주의는 홍콩의 안정과 번영의 근간”이라면서 “홍콩 보안법이 이런 원칙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홍콩에서 민주주의뿐 아니라 집회와 표현의 자유도 계속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외무부도 이날 정례 온라인 브리핑에서 홍콩 보안법 통과에 대한 의견을 요구받자 “22일 유럽연합(EU)이 발표한 입장과 같다”고 밝혔다. EU는 22일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명의의 성명에서 홍콩의 고도의 자치권 유지를 촉구하면서 “EU는 일국양제하에서 홍콩의 계속되는 안정과 번영에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코로나19에 이어 홍콩의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움직임까지 이어지자 유럽 내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 모리스 리퍼트 전 주중 프랑스대사는 블룸버그통신에 “코로나19와 홍콩 보안법 추진은 세력을 확장하려는 중국의 야망에 대해 믿지 않았던 사람들을 각성시켜주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이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과 달리 유럽의 경우 경제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미국의 반중 전선에 합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 외무장관 역할을 맡고 있는 보렐 고위대표는 최근 EU 외무장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가 유럽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