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은행권의 비대면(언택트) 서비스가 강화되고 있지만 온라인 상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객은 비대면 상담 이후 투자까지는 주저하고, 은행은 여전히 규제 그물에 마음 놓고 서비스를 확대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부터 비대면 방식의 특정금전신탁 계약체결을 허용해 언택트 투자의 길이 열렸지만 은행은 물론 고객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언택트 신탁을 시작한 곳은 KB국민은행이 유일하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11일 인덱스·헬스케어 등 국내외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 등 28종을 국민은행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인 ‘스타뱅킹’에서 비대면 신탁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영업점에서 가입하는 것보다 0.2~0.3%포인트 낮은 신탁보수를 받고, 모바일 접근성이 강화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실적이 없다. 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도 오는 3·4분기를 목표로 언택트 신탁을 검토 중이지만 일단은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액자산가는 비대면보다 PB센터 등을 통해 신탁 가입을 선호하고, 일반 고객이 온라인 거래에 능숙할 경우에는 ETF를 직접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며 “언택트 신탁의 타깃 고객층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영상통화를 남겨둔 점도 금융 소비자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볼 수 없어 고객 유인을 끌 만한 이점이 없다”고 평가했다. 당초 은행권은 비대면 가입시 영상통화 제외를 금융당국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언택트 신탁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전산개발과 인력 비용을 고려하면 경쟁력이 없는 셈이다.
무엇보다 신탁 내 비중이 큰 주가연계신탁(ELT)에 대한 판매 총량 규제가 걸린 이상 언택트 신탁이 활성화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이 ELT 등 신탁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은 1조1,089억원으로 전년 대비 10%가량 성장했지만 총량 규제에 걸린 만큼 성장세는 꺾일 수밖에 없다. ELF에 이어 라임운용 사태 등 은행권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도 해소해야 할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불완전판매를 해소하기 위해 아예 총량 규제가 내려졌는데 비대면으로 상품을 팔 경우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 처음 언택트 신탁을 내놓은 국민은행이 상품 라인업에 ETF만 편입시킨 이유다.
결국 은행별로 시작된 비대면 자산관리 서비스에 상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채널을 접하게 된 고객들은 언택트가 익숙할 것”이라며 “관건은 상품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주가연계증권(ELS)과 같은 복잡한 상품은 비대면으로 판매가 어렵지만 카카오페이와 토스에서 부동산, 신용분산 등의 P2P 상품은 완판되고 있다”며 “상품 자체가 단순하고 즉각적일 때 투자 접근성은 용이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