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터널(수근관)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다. 손목터널을 좁힐 수 있는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손목터널증후군은 주로 ‘화이트칼라(사무직노동자)의 병’으로 인식됐다. 사무직 특성상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래 잡고 있다 보면 손목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고 손목 인대가 두꺼워져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길 수 있어서다.
◇블루칼라 10만명당 환자 3,247명…사무직의 1.8배
하지만 최근 이런 통념과 다른 연구결과가 나왔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손목터널증후군은 사무직보다 블루칼라(육체노동자)에서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루칼라 10만명당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는 3,247명으로 사무직(1,824명)의 1.8배나 됐다. 블루칼라 중에서는 식품가공업 종사자 5명 중 1명꼴(10만명당 1만9,984명)로 손목터널증후군이 발병했다. 정육원, 김치제조 종사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숙박·여행·오락·스포츠 분야 관리자(호텔 직원, 놀이기구 진행요원 등)와 환경·청소·경비관련 종사자가 뒤를 이었다. 여성은 농림어업 종사자의 발병률이 10만명당 3만3,118명으로 가장 높았다.
연세건우병원 이상윤 원장(정형외과 수부상지 전문의)은 “키보드를 치는 행위는 힘이 많이 들어가는 동작은 아니지만 장시간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행위를 하는 경우 손목에 힘이 계속 들어가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가 손목터널증후군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인구 10만명당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는 여성이 4,572명으로 남성(1,798명)의 2.5배나 된다. 여성이 집안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프라이팬·냄비를 들고 옮기거나, 행주·걸레를 짜거나, 손빨래 등 손목에 무리를 주는 동작이 많다 보니 남성보다 손목터널증후군에 더 쉽게 노출된다.
심한 경우 손에 힘이 빠지고 통증 때문에 젓가락질, 옷 단추 채우기, 병뚜껑 등을 돌리거나 빨래를 짜기 어려워진다. 손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거나 잠을 자다가 통증 때문에 깨기도 한다. 오랫동안 방치하면 엄지 근육이 위축돼 납작하게 된다.
치료는 초기엔 손목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기를 착용하고 염증을 완화하는 비수술적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증상이 미약해 파스를 붙이거나 온찜질을 하며 버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질환이 오래 진행돼 근육이 위축되고 손목·손가락 운동기능에 장애가 나타난 뒤에야 병원을 찾는 환자도 적지 않다. 이 원장은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통증이 심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기 때문에 수술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6개월 이상 방치 땐 통증 만성화·신경 과민해져
손목터널증후군은 초기에 손목 사용을 줄이는 게 좋다. 불가피하게 손목을 써야 한다면 1시간에 5분 이상 쉬어준다. 손목을 사용하기 전 팔을 쭉 뻗고 손가락이나 손등을 몸쪽으로 당기는 스트레칭을 해주고 손목을 많이 사용했거나 통증이 있을 때 10~15분가량 온찜질이나 마사지를 해준다. 소염제 등 약물치료, 보조기 착용 등 비수술적 치료도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3개월 이상의 비수술적 치료에도 신경이 눌리는 정도가 심해 손이 저리고 무감각해지며 힘(악력)이 떨어지거나 엄지 근육 부위에 위축이 온다거나 자다가 통증 때문에 깨기도 한다면 수술을 고려한다. 길이 3~4㎝의 손목 터널 인대구조물을 벌려 넓혀주는데 10~15분 정도면 끝나고 잘 아문다.
이상욱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손목터널증후군은 초기 증상이 미미해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신경조직이 상해 만성화되거나 근육위축이 진행돼 운동기능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손목터널증후군에 따른 통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오랜 기간 고생할 수 있다. 따라서 수술 전후 통증 조절이 중요하다.
노영학 이대목동병원 정형외과 교수팀이 손목 피부를 절개하고 인대구조물을 넓히는 수술을 받은 131명을 조사했더니 수술 전 통증이 심했던 환자는 수술 후 3~6개월까지도 심한 손목 심부통증(기둥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기둥통은 수술 후 1년쯤 돼서야 누그러졌다.
노 교수는 “통증을 관리하지 않은 채 수술을 하면 통증이 더 심해지는 등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수술 전후에 통증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손목터널증후군을 6개월 이상 방치하면 통증이 만성화되고 신경이 과민해져 가벼운 자극에도 심하게 아파한다”며 “이런 경우라면 소염진통제 등 약물치료만으로는 효과가 떨어지므로 짧게는 4~6주, 대개 2~3개월 정도 집중적인 물리·작업·약물·행동치료(마사지 등)를 병행해 통증의 고리를 빨리 끊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