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경영진은 2014년 10월부터 펙사벡 임상 실험이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인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가 이런 정보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부과된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매도했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사실이다. 2014년은 신라젠이 장외시장서 바이오 기업 유망주로 떠오르던 때로 기업공개(IPO)를 한 2016년 말보다 무려 2년 전이다.
7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신라젠 설립자 황모씨와 문 대표 간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의 민사재판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곽병학 전 감사는 2014년 10월24일 문 대표 등 경영진과 펙사벡 연구를 담당하는 황씨에게 펙사백 임상3상 실패의 가능성에 대해 알렸다. 곽 전 감사는 이메일에서 “현재 ‘종양 내 주사법’ 방법에 의한 임상 3상 프로토콜은 성공 가능성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따라서 (다른 주사법인) 동맥주사 방법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판결은 당시 문 대표가 황씨의 스톡옵션 50만주 등을 취소해 주식인도청구를 하고 문 대표가 황씨를 손해배상으로 반소한 사건이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서 지난해 12월 황씨가 승소해 50만주를 최종 돌려 받았다.[관련기사▶신라젠 사건의 발단 ‘황박사’, 원수지간 된 문은상과 나란히 기소]
펙사벡을 처음 연구하고 개발하던 미국의 제네렉스사와 협력업체 관계였던 신라젠은 제네렉스가 펙사벡 후기 임상 2상 시험에 어려움을 겪던 2014년 3월 이 회사를 인수했다. 2014년 중순경 펙사벡 2상 시험은 실패했다. 미국 등에서 신라젠은 펙사벡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곽 전 이사가 당시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설명을 한 것이다. 황씨를 중심으로 신라젠은 동맥주사 방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러나 황씨는 동맥주사 방법 연구 과정에서 연구에 필요한 바이러스 실험물질 등이 없어 다른 실험물질로 대체해 임의로 식약처에 임상시험계획을 제출했다. 문 대표 측은 임상시험계획 제출을 위해 진행한 동물실험 결과도 좋지 않았지만 황씨가 이를 속이고 강행했다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임상 3상 시험을 위한 준비 과정에 문제 소지가 있음을 충분히 인지한 것이다. 그러나 신라젠 주주모임 등에 따르면 신라젠 경영진은 일반 주주들에게 임상 3상 시험 과정에서 우려할만한 일이 발생했음을 공유하지 않았다.
문 대표 측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도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2017년 12월 부산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증여세와 양도세로 1,700억원을 내야 했던 상황에서 문 대표는 자신의 주식을 팔아서라도 납세를 해야 했고 임상 실패 전 부당이득을 챙기려 한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검찰도 수사를 하며 문 대표와 황씨 간 민사소송 판결문 등을 참고해 문 대표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를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서정식 부장검사)는 문 대표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 혐의로 지난달 29일 구속 기소했다. 신라젠 관계자는 “(펙사벡 임상 실험인) 간암 항암제 임상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황교수가 제시한 주사법은 세계 항암 연구자들이 볼 때 말이 안 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손구민·이희조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