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0시경,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회전문 앞에 검은색 밴 한 대가 섰다. 밴에서 내린 사람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는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내렸다. 순간 이 부회장의 지지자와 그의 구속을 주장하는 이들이 주변에서 각각 “이재용 파이팅”, “이재용 구속”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걸어 나오다 미리 표시해 놓은 법원 포토라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지난해 10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 출석한 이래 8개월 만이었다. 포토라인 앞에는 미리 대기하던 취재진이 있었다. 취재진은 “불법합병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 없나”, “수사 과정에서 하급자들이 보고가 있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전히 부인하나”, “3년 만에 영장심사를 다시 받는 심경이 어떤가” 등을 물었다. 이 부회장은 아무 말 없이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출석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도 묵묵부답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이 법원 청사로 들어간 순간 허공에 울리던 구호도 잦아들었다. 채 5분도 안 되는 사이 벌어진 풍경이었다.
이 부회장이 8일 지난 2017년 2월 이후 약 3년 4개월만에 다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이번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둘러싼 의혹 사건이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321호 법정에서 이 부회장과 최 전 부회장, 김 전 사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시작했다. 검찰에선 이복현(48·사법연수원 32기)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과 최재훈(45·35기) 부부장, 김영철(47·33기)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 등 수사팀 검사 8명이 참석했다. 삼성 측에서는 판사 출신 전관을 중심으로 10명 가까운 변호인단이 변론에 나섰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해 외감법 위반(분식회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주가조작)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서 주식매수청구권 청구 기간 동안 호재성 정보를 집중 공개하고 자사주를 대량 매입하며 주가를 부양했다고 보고 있다.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사기 의혹도 고의적 분식회계가 맞는 것으로 판단한다. 김 전 사장에겐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재판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승계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증언해 위증죄를 추가 적용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측은 1년 8개월 넘는 수사로 필요한 증거가 대부분 수집돼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을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글로벌 기업인으로서 도주 우려가 희박하다고 점도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결과를 기다릴 예정이다. 구속 여부는 이르면 이날 밤, 늦어도 9일 새벽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