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은 참 아이러니한 배우다. 대중 앞에 나서야 하고 얼굴을 비쳐야 하는 직업을 가졌으면서 정작 본인은 스크린·카메라 울렁증이 있단다. 그런데도 연기는 곧잘 해낸다. 이미 안방극장 시청률 퀸으로 올라섰고, 이제 곧 영화 ‘결백’으로 스크린 첫 주연을 맡아 스크린까지 장악할 준비를 마쳤다.
‘결백’은 당초 2월 개봉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사태로 개봉을 두 차례 미뤄야 했다. 스크린 첫 주연작의 개봉일이 계속 연기되는 과정 속에서도 신혜선은 마음 고생 보다는 걱정이 컸다.
“영화가 개봉을 하느냐 못하느냐를 떠나서 어찌됐든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해지니까 진짜 걱정이 되더라고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있잖아요. 나가면 모두 마스크를 하고, 안 낀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제 직업 자체가 여러 사람들을 친밀하게 만나야 하는 직업인데, 더 걱정이 되더라고요.”
영화 ‘결백’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엄마 화자(배종옥)의 결백을 밝히려는 유명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정인(신혜선)이 추시장(허준호)과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한 추악한 진실을 파헤쳐가기 위해 직접 엄마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직접 변호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신혜선은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줬던 밝고 긍정적인 모습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 이성적이면서도 냉철한 변호사 정인으로 변신했다. 영화 초반에는 표정을 크게 드러내는 장면이 없지만,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분노, 연민 등 복잡한 속내를 표현하다 감정이 격해져 폭발하는 신도 나온다. 이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먼저였다. 신혜선은 정인이 살아온 인생, 배경 등을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다.
“정인이는 자신의 운명을 헤쳐 나와 도전해봐야겠다는 사람이에요. 현실에 안주해 살아가야 하는 엄마를 뿌리치고 도망 나왔거든요. 정인의 고향이고 살아왔던 곳이지만 자신에게는 지우고 싶은 과거라고 해야 되나. 마음의 상처를 갖고, 점점 독해졌을 것 같아요. 그러는 와중에도 엄마가 필요했던 것 같은데, 성격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감정이 확실하지 않고 묘했던 점이에요. 확실히 싫다, 좋다 나눌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굉장히 뒤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 나에게 너무 필요하고, 사랑하는 존재인 엄마가 내가 가장 닮고 싶지 않았고, 제일 싫어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죠. 과거가 어찌됐든 용기가 없었던 엄마의 모습이 답답해서,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는 신혜선 외에도 브라운관에서 주로 활약을 해온 배우들도 출연한다. 배종옥은 치매에 걸린 엄마로, 홍경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으로 출연해 극으로의 몰입을 도왔다.
“배종옥 선배님 덕분에 집중력을 놓칠 수 가 없었어요. 선배님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세트가 준비돼 있으면 앞에 모니터를 설치해놓고 그때부터 스탠바이 하세요. 분장 받는 순간부터 준비한 상태죠. 집중력을 안 놓치려고, 평상시에도 끌고 가시는 거죠. 선배님이 집중력을 다 잡아주시니까 놓칠 수가 없더라고요. 동생으로 출연한 홍경이는 평상시에 순박한 아이예요. 그런데 연기할 때는 그 친구에게 압도됐어요. 얘가 진짜 정수(극중 이름)인가 싶을 정도로 저를 압도하고, 집중력이 너무 좋아서 놀랐어요.”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큰 줄기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모녀의 과거,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춘다. 신혜선은 이번 영화를 통해 엄마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집에서 둘째 딸로, 엄청 철부지에요. 가족들한테는 챙김을 당하는 사람이죠. 늘 걱정되고, 아직도 애 같은가봐요. 그런데 이번 영화 개봉을 기다리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웃으시려고는 하는데 슬프게 말씀하신 게 ‘나이 든 할머니도 엄마는 엄마다’, ‘엄마한테도 엄마는 필요하다’라고 하셨죠. 영화 찍을 때 모녀의 정이 느껴졌지만, 확 와 닿지는 않았는데 배종옥 선배님의 대사 중에 ‘새끼는 비바람이 쳐도 어미만 있으면 돼’라는 게 있는데 그 말이 뭔지 확 알겠더라고요.”
데뷔 8년차지만 아직도 화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도 배우라는 직업의 일부다. 그런데 신혜선은 ‘처음’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했다.
“큰 스크린 화면에 나오는 제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해요. 특히 이번 영화가 클로즈업 장면이 유독 많아요. 카메라 울렁증은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안 나아 질 것 같아요. 저는 ‘처음’이라는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첫 리딩, 첫 촬영, 첫 만남 이런 것들에 대한 울렁증이죠. 영화 첫 촬영날에도 카메라가 무서웠어요. 울렁거리는 감정이 있지만 하다보면 옅어지긴 해요. 초반에 비해서는 정말 많이 괜찮아졌죠. 그런데 약간의 울렁증, 긴장감이 있어야 연기를 잘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결백’은 신혜선 원톱 주연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시사회 후 신혜선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매 작품마다 칭찬을 받아온 신혜선은 여전히 칭찬에 목마르다. 인터뷰에서도 “칭찬을 듣고 싶다”라던 신혜선은 부정적 평가에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부정적 반응에) 예민하다기 보다 눈에 확 들어오긴 해요. 내가 연기를 못했을지언정 그걸 읽는 순간 상처가 되기도 하죠. 그래도 타당하면서도 부정적인 댓글도 있잖아요. 너무 수용이 돼요. 저에게도 안 좋은 평가가 없었다고 할 수 없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안 볼 수 없어요. 반응들을 눈여겨 보게 돼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의 꿈을 꿔온 신혜선은 장래의 길이 확고했다. 부모님에게 손편지를 쓰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확실하게 주장했고, 배우만을 목표로 지금까지 길을 걸어왔다. 결국 꿈을 이뤄낸 그는 현재 배우로서의 행복도가 10점 만점에 9.5점이라고 했다. 배우로서의 멘탈관리도 집약적으로 한다고.
“부모님께서 제가 배우가 되는 걸 격렬하게 반대하시기 보다는 헛꿈을 꾸는 줄 아셨대요. 보통 제 나이 또래에는 허무맹랑하게 ‘연예인 될거야’ 하니까. 그런 줄 아셨대요. 헛바람 들었구나 하셨죠. 초등학생 까지는 장래희망 1지망에 탤런트라고 썼었는데, 중학교 들어가고는 사춘기가 와서 남한테 내 꿈을 이야기 하는 게 창피해서 숨겼어요.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하면서 부모님께 배우가 되겠다는 손편지를 썼고, 편지를 보시고 나서 부모님께서 나름 응원을 해주셨어요.”
“따로 멘탈관리는 하지는 않아요. 그냥 너무 고민이 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면 시간을 5분~10분 정해놓고 생각을 해요. 내가 여기서 고민하고, 생각한다고 달라질 게 없기 때문에 그 시간만 고민을 하고 그 이후엔 신경을 안 쓰려고 해요. 깊게 생각하고, 확 다시 나와요. 연기하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