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경영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호재기자이재용(52)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조만간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법정으로 승부처가 옮겨갈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이 현재로서는 구속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만큼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검찰 기소 전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불기소 의견이 나오면 삼성 측에 유리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9일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후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법리적 책임 유무를 따질 만큼의 소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범죄 혐의가 확실하게 소명되지 않은 만큼 재판에 앞서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을 막기 위한 구속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삼성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판단도 일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원 부장판사가 재판에서 양측의 쟁점을 다퉈보는 게 타당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덧붙이면서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이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여부에 대해 따지자고 승부수를 던진 상황에서 법원이 먼저 기소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영장 판사가 기본적인 사실관계 소명과 상당 정도의 증거가 확보됐다고 인정하고 재판에서 다퉈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은 검찰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검찰은 어떤 행보를 보일까. 사건의 쟁점과 함께 검찰 간부 인사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려 있다. 우선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여지는 아직은 남아 있다. 다만 구속영장 청구서에 새롭게 추가할 혐의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번 구속영장 혐의인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부정거래,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외 다른 혐의를 추가해야 한다. 지난 2017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재산 국외 도피,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를 추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바 있다.
오는 7월 검찰 인사설을 고려하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관측도 있다. 만약 수사 도중에 인사가 이뤄지기라도 하면 수사 시일이 또다시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1년8개월을 끌어온 수사가 다시 한 번 늘어지면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무리한 수사라는 여론의 비판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영장 재청구까지 2~3주는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사 시기에 임박할 수 있다. 박영수 특검의 경우 영장 재청구까지 26일이 걸렸다.
삼성 입장에서는 법원에서 쟁점을 다투기보다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의견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검찰이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던 사안인 만큼 기소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기소 의견이 나오면 당장 비판 여론은 물론 향후 재판에까지 부정적 영향이 이어질 수 있다. 영장 판사가 재판의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의견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