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초 호주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이 호주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호주 일간지 1면에는 매일 중국계 큰 손의 호주 부동산 투자 기사가 실렸고, 호주의 주력 산업인 철강·농산물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기사들이 넘쳐났습니다. 실제 호주 경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중국은 호주의 최대 무역국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호주에 굉장히 중요한 나라이지만 안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불편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호주는 동맹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늘 선택을 강요받곤 합니다. 이처럼 호주와 중국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호주 입장에서 중국은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최근 호주와 중국의 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2018년 호주 정부가 화웨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어색해진 양국 관계는 최근 들어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입니다. 두 국가 사이의 균열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과연 양국 간의 관계가 이대로 영영 멀어질까요.
중국, 13년 만에 호주 투자 최저
지난해 중국의 호주 투자는 23억 9,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58.4%나 감소했습니다. 이는 2007년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입니다. KPMG와 시드니 대학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호주 투자는 42건에 그쳐 전년 74건에 비해 43% 줄었습니다. 중국의 호주 투자는 앞으로 당분간 계속 감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주가 지난 5일(현지시간) 통신·에너지·기술 등 국가 안보에 민감한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안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외국인 민간 투자 금액이 2억 7,500만 호주달러 이상인 경우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앞으로 민감한 안보 관련 사업에 대해서는 투자 금액과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FIRB 승인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연방 재무부가 안보 관련 외국인 투자에 대해 언제라도 국가 안보적 사유로 추가 조건을 부과하거나 자산 처분 등을 강제할 수 있게 하고, 호주 국세청(ATO)이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 조사권은 물론 직접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도우 퍼거슨 KPMG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담당자는 “지난 2008년 이후 중국 회사들은 호주에 1,070억달러를 투자해왔으며 이는 호주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며 “하지만 앞으로 신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블룸버그통신은 “호주의 새로운 외국인 투자 정책이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참고로 중국 자본이 호주에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는 식량·농업으로 지난해 중국 자본의 호주 투자에서 44%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43%로 두 번째로 큽니다.
화웨이 보이콧이 발단..코로나19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최근 양국 간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것은 지난 2018년 호주가 자국의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 사업에 화웨이의 참여를 금지 시키면서부터 입니다. 여기에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양국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악화 됐습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지난 4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의 기원을 국제 조사하는 방안에 지지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모리슨 총리는 “코로나 기원을 밝히는 조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중국이 밝힌 것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해 중국을 자극했습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모리슨 총리의 발언을 “정치적 계략”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중국 관영 언론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지난 4월 27일 웨이보에 “호주는 항상 소란을 피운다.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가끔 돌을 찾아 문질러줘야 한다”는 발언으로 호주에 모욕을 줬습니다. 청징예 호주 주재 중국 대사 역시 “호주 소고기·와인의 중국 수입을 중단하고, 중국인 학생과 관광객의 호주 방문에 대해 재고하게 될 것”이라며 협박했습니다. 아울러 지난 5일 호주 정부가 외국인 투자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한 직후인 6일에는 중국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호주에서 코로나19 이후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며 호주 여행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대안 찾는 호주
이처럼 양국 간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우선 당장은 호주에 타격이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호주의 중국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입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2018~2019년 호주 전체 수출의 26%를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인 일본은 절반 수준인 13%에 그쳤습니다. 중국 정부도 이를 무기로 호주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최근 호주산 보리에 대해서 덤핑 판정을 내리고 최대 80%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호주 4개 기업의 소고기 수입도 일시 중단하는 등 호주의 비우호적인 조치에 맞대응해 보복 조치를 하나씩 내놓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일 호주 농가들이 호주산 곡물에 대규모 관세를 때린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고객으로 일본·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호주 내에서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직 호주 경제의 다각화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섣불리 대중 의존도를 낮추다가 중국 시장을 경쟁 국가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