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측과 연락 채널을 폐기하며 지난 2018년 평창의 봄 이후 2년여 동안 유지된 한반도 평화에 파문을 던졌다.
이례적인 북한의 신속한 행동은 김 위원장이 단순히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기보다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계획을 밟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북한의 국내 사정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조심스럽게 관측된다. 2018년 상황과 2020년 동북아 정세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와 미중 간의 신 냉전은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경제발전 구상에 대한 기대감을 사라지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북한은 장기간의 고강도 대북제재와 코로나 19 방역을 위한 국경봉쇄로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래닛 랩스’의 위성사진 자료를 확인한 결과 최근 북·중 접경지역에서 컨테이너 트럭 등이 분주하게 이동하는 움직임도 연이어 포착되고 있다. 코로나 19 상황이 안정국면에 접어들지 않았음에도 의료체계가 취약한 북한이 국경을 연 것은 그만큼 자국 내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북한 주민들은 코로나 19로 인한 국경봉쇄 조치 탓에 쌀과 밀가루, 설탕, 식용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는 외신 보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는 노동당 창건 75주년으로 김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경제 성과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지만 ‘정면돌파전’도 여의치 않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한 W의 전기, 한 g의 시멘트, 한 방울의 물도 아껴 쓰기 위한 사업을 강하게 내밀어야 한다”며 “선질후량(先質後量)의 원칙으로 생산과 건설을 날림식으로 하는 토목공사식, 야장쟁이식 일본새(업무 태도)를 철저히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발전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절박함이 느껴지는 문구로 가득하다.
국내 정치적 위기를 맞은 김 위원장이 꺼내 든 카드는 결국 대남 강경 노선이다. 사회주의 정권의 생존력은 확고한 당의 규율과 정치적 저항을 분쇄하는 힘에 달려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은 ‘선군정치’를 활용해 내부 단속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전문가인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제재에 에상치 못한 코로나까지 겹친 상황에서 정면돌파전을 내세워 북한 주민을 끌고가자면 지금 이러한 엄혹한 상황과 사태가 누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이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며 “내부적 결속용이 크고 대외적으로도 협상이나 대화의 신호라기 보다 자신들은 굴복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것이라는 메시지”라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1990년대 선대인 김정일이 냉전체제의 해체와 고난의 행군 때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선군정치였다. 당시 북한은 제국주의자들의 반동과 책동을 강조하며 외부의 적을 만들어 주민들의 불만을 달랬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아사사태보다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퍼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이 경제난을 한국과 미국의 탓으로 돌리며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노력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교수는 “문제는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그냥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있을 수 있다”며 “무엇보다 군사분계선이 명확한 육상 공중이 아니라 6월이 꽃게철이라는 점에서 서해 해상에서 북한의 조치가 어떻게 나올지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