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찾은 경기도 성남시 메디포스트(078160) 본사 지하 제대혈은행에는 초등학생 키 만한 은빛 탱크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탱크 앞면에는 붉은색 글씨로 고유번호가 적혔고, 뚜껑에 달린 모니터는 온도와 보관 현황을 나타냈다. 탱크들은 번갈아가며 하얀 연기를 폭포수처럼 내뿜기도 했다. 홍혜경 메디포스트 제대혈사업본부장은 “제대혈을 온전한 상태로 냉동시키려면 저장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탱크 스스로 온도를 맞춘다”며 “탱크 하나마다 제대혈 2,000여유닛이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메디포스트 제대혈은행은 2000년 6월 26일 처음 문을 열었다. 만 스무 돌을 맞은 현재까지 보관 중인 제대혈은 약 25만9,000유닛(1유닛은 25㏄ 안팎)으로 국내 전체(51만3,600유닛)의 절반을 웃돈다. 국내 최초 사업자는 아니지만 업력과 규모 면에서 사실상 국내 제대혈은행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대혈은 아이를 낳을 때 탯줄과 태반 속 피를 말한다. 제대혈 속에는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등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와 연골이나 뼈, 근육등을 만드는 간엽줄기세포가 많이 들어있어 이를 활용해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메디포스트 제대혈은행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은 사례는 556건(지난 1월 기준)으로 기증 제대혈을 통한 비혈연간 이식이 462건, 본인 이식이 78건, 혈연간 이식이 16건이다. 조혈모세포로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빈혈 같은 병을 치료하거나 줄기세포로 뇌성마비, 뇌손상, 발달지연 등을 고친 사례가 다수를 차지한다.
지난 20년간 제대혈은행과 치료방식도 진화했다. 초창기 혈액암 치료를 위한 조혈모세포 이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줄기세포 활용 기술이 개발되며 최근에는 뇌성마비와 소아당뇨, 발달장애까지 치료가 가능해졌고 미래에는 더 많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설립 초기 15년이던 보관 기관도 25년과 40년, 평생 등으로 다양해졌다. 성인에 대한 이식도 75건으로 점차 성인 활용 사례도 늘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2018년부터 제대혈을 4개로 분산해 보관하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한 번 해동한 제대혈은 다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홍 본부장은 “난치병에 걸렸을 때 적합한 기증제대혈을 찾을 확률은 매우 낮다”며 “최근에는 가족의 보험처럼 생각해 제대혈을 보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성남=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