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코로나 앓는데 反기업법까지…숨넘어가는 기업들

거대여당 업은 정부, 11일 상법개정안 입법 예고

다중대표소송제·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 담겨

규제강화 조항 포함된 공정법 개정안도 재추진

재계 "경영권 흔들려 해외 투기자본 입김 세질것"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을 골자로한 상법 개정안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을 골자로한 상법 개정안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거대 여당이 기업 활동을 옥죄는 ‘반(反)기업법’ 밀어붙이기에 본격 나섰다. 거여(巨與)가 117석의 의석으로 분위기를 띄우면 정부가 관련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재계는 “관련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의 고유한 경영권을 보장하는 시장경제의 원칙이 훼손되고 해외 투기자본에 악용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1115A01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주요 내용


법무부는 10일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요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마련해 11일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다중대표소송은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비상장회사 주식 전체의 100분의1이나 상장회사 지분 1만분의1을 보유한 주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개정안에는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정부 여당이 이들 방안과 함께 논의돼온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은 재계의 입장을 반영해 이번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무부의 상법개정 재추진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총 관계자는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모회사가 자회사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해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이런 문제점 때문에 독일·프랑스·영국 등 대다수 국가에서 도입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사위원 분리 선임의 경우 대주주의 감사위원 선임 결정권은 과도하게 제약되는 반면 펀드나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20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불발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을 다시 추진한다. 가격·입찰 등 중대한 담합과 관련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 핵심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업자에 부과되는 유형별 과징금 상한을 2배로 확대하고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상장회사의 경우 특수관계인 합산 15%까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지원은커녕 옥죄기만…"시행땐 제2 엘리엇사태 부를수도"


법무부가 상법 개정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재계는 투기자본의 경영간섭 등 기업 경영활동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이 주요 내용이다.

재계에서는 특히 정부의 권고에 따라 지주회사 체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한 기업일수록 이번 상법 개정으로 투기자본에 휘둘릴 우려가 커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를 공격했던 것처럼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빈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10일 법무부가 밝힌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의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가 뽑은 이사들과 따로 선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된다. 또 기업의 자회사 이사가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킬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내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된다. 재계가 추진에 반대해온 제도 중 하나인 집중투표제는 이번 법안에서 빠졌다.

①감사위원 분리선임=현행 상법은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출한다. 하지만 개정 상법에 따르면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한다. 감사위원이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경영활동을 감시하게 한다는 취지지만 재계 입장에서는 감사위원 선임결정권에서 대주주가 사실상 배제될 수 있다. 또 펀드나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미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약돼 있지만 해당 제도 도입 시 펀드나 기관투자가는 더 적은 지분으로도 연합을 통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세력이 단기차익을 노리고 들어올 경우 감사위원 선임 등을 무기로 배당 확대 등에 집중해 기업의 장기 성장 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감사위원에게는 회사의 모든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있는 만큼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나 경쟁사와 연관된 펀드가 이를 악용해 회사 기밀을 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지주사일수록 경영권 침해 여지가 더 크다는 문제도 있다.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GS그룹이 대표적이다. LG 오너가의 ㈜LG 지분율은 46.15%, GS 오너가의 ㈜GS 지분율은 50.96%에 달한다. 현 정부에서 대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으로 꼽혔던 곳일수록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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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해외에서도 입법례를 찾기 어렵다. 경총 관계자는 “감사위원이 이사 지위를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사 선임 단계에서부터 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라며 “이사 선임 시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주주권 침해로 아직 외국에서도 입법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②다중대표소송제 도입=개정 상법에는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법적 책임을 묻는 다중대표소송 제도를 도입하도록 했다. 비상장회사 주식 전체의 100분의1, 상장회사는 1만분의1을 보유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현재 상법에서는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를 상대로 손해의 책임을 추궁하는 대표소송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가 장악한 자회사의 불법행위로 모회사가 손해를 볼 경우 일반주주가 사측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재계는 다중대표소송제로 모회사가 자회사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해 경영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 주주의 부당한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 주주에 비해 적은 지분으로도 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이 가능해 모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 간 평등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문제점 때문에 독일·프랑스·영국 등 대다수 국가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제도를 도입한 미국·일본도 매우 엄격한 소송 제기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60%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자회사 주주가 해당 회사(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하려면 자회사 주식의 1%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반면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자회사 주식의 0.6%(모회사 지분 1%×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60%)만 보유하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주주권의 형평에 맞지 않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③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 요건 완화=상장회사의 감사위원을 선임·해임할 때 2조원 이상의 상장사와 나머지 상장사를 이원화한 것을 일원화해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등을 합해 3%까지, 일반주주는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했다. 아울러 전자투표를 실시해 주주의 주총 참여를 제고한 회사에 한해 감사 등을 선임할 때 주주총회 결의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감사위원회 위원 및 감사 선임 시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1 이상의 수로 의결한다. 앞으로는 전자투표를 실시한 회사의 경우 발생주식 총수 요건을 고려하지 않고 출석 주주의 과반수로 의결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정한 시점을 배당기준일로 전제한 규정을 삭제해 배당기준일 관련 규정도 개선한다. 이를 통해 12월 결산사의 3월 말 이후 정기 주주총회 개최가 가능해지는 효과 등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도 확대…감시기업 380곳 늘어나


1115A03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주요 내용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상임위원회 소위조차 한 번 열지 못할 정도로 지지부진한 논의 끝에 자동 폐기된 것은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에 대한 재계와 야당의 우려가 워낙 강했던 탓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돌발변수로 경제위기가 심화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고 나선 배경에는 지난 총선을 통해 거대의석을 확보한 정치지형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은 10일 관련 브리핑에서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기는 했으나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산업계가 우려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항들이 사실상 그대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우선 개정안은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권리인 ‘전속고발권’을 가격과 입찰 등 중대한 담합(경성 담합) 분야에서는 폐지했다. 공정위는 “검찰과 경쟁당국이 정보 공유를 통해 ‘우선 조사’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여전히 중복수사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정보 취합이나 내사 단계에서는 완벽한 공유가 힘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관 간 실적경쟁이나 힘겨루기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며 “전속고발권이 사라지면 기업들은 고발 남용에 따라 ‘사법 리스크’가 한층 높아지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과징금의 상한은 두 배로 높아진다. 관련 매출액의 일정 비율로 정한 과징금 상한은 담합이 10%에서 20%로, 시장지배력 남용은 3%에서 6%로, 불공정거래행위는 2%에서 4%로 각각 올렸다. 일감 몰아주기 감시 대상도 대폭 확대된다. 현재는 총수 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인 회사가 감시 대상이지만 이 기준을 상장사·비상장사 구분 없이 20%로 일원화한다. 전경련은 상장사 기준으로 총수 일가 지분이 20~30%인 기업들이 법 개정에 따라 규제를 피하기 위해 20%를 초과하는 지분을 매각할 경우 4조1,00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개정안은 계열사가 50% 넘게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일감 몰아주기 감시 대상에 추가했다. 이 조항들이 모두 통과되면 현재 지분 기준으로 규제 대상 기업은 210개에서 591개로 늘어난다. 현대글로비스·삼성생명·SK를 비롯해 삼성물산의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 등이 줄줄이 공정위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게 된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지주회사는 본질적으로 다른 회사 지배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자회사 보유지분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정책적으로 유도해놓고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도 강화된다. 현재 상장사 20%, 비상장사 40%인 기준이 각각 30%, 50%로 높아진다. 다만 그동안 정부가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해온 측면을 고려해 새로 만들어지는 지주회사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보유지분 기준 상향으로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자회사·손자회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힘들어진다.

개정안에는 벤처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하는 내용도 담겼으나 대기업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제한적 보유 허용과 관련한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CVC의 제한적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공정위는 금산분리 원칙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안현덕·변수연·김민형·박한신·박효정기자 세종=나윤석기자 always@sedaily.com

안현덕·나윤석·변수연·김민형·박한신·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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