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을 더 돌려야 할 때다. 아직 국민 여론도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우리가 국민연금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
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15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차기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보험료율 인상과 같이 국민 부담을 키우는 연금 개편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정권에 큰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세종 컨벤션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르면 21대 국회 초기, 그게 힘들다면 차기 대선 국면에서 국민연금 개편이 하나의 의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으나 21대 국회에서 국회 차원의 합의안 도출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각기 다른 이유로 연금개혁에 주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997년 1차, 2008년 2차 등 연금개혁 때마다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아 그간 연금개혁은 소득대체율을 낮추거나 수급연령을 뒤로 늦추는 식의 땜질 처방에 그쳤다. 2018년 정부는 공적연금으로 월 100만원 안팎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방향의 4가지 개편안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국회 논의 공전으로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정부가 단일안을 내지 않고 국회에 네 가지 개편안 중 하나를 고르라고 공을 떠넘긴 것도 국민연금 개혁안 표류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박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단일안 마련은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민연금 개편안이 이처럼 표류하는 사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지난해 6월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애초 정부가 추정한 오는 2057년보다 3년 앞당겨 2054년으로 내다봤다. 저출산 구조로 가입자는 줄지만 수급자는 느는 데 따른 결과다. 실제로 2일 국민연금공단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2020~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2,232만명 수준이던 국민연금 가입자는 지난해 2,222만명으로 처음으로 0.44% 줄었다.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올해 2,205만명(-0.75%), 2021년 2,193만명(-0.53%), 2022년 2,181만명(-0.53%), 2023년 2,167만명(-0.64%), 2024년 2,155만명(-0.56%)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한편 박 장관은 이날 비대면 의료 도입과 관련한 전향적 입장도 내놨다. 다만, 원격의료의 주된 수익자는 개업의가 돼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박 장관은 “원격의료는 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하겠다는 점을 항상 강조해왔다”며 “국민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상위가치고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할 경우 그 수익자가 1차 개업의가 되도록 하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장관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비대면 진료에 대해 국민뿐만 아니라 1차 의료기관들의 인식도 많이 바뀐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2월 말 일선 병원에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 및 처방을 허용한 후 5월31일까지 36만6,000건이 이뤄졌다.
아울러 박 장관은 복지부 소속 기관인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 외청인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기로 한 이날 당정협의 결과와 관련해 “청으로 승격되는 것은 굉장히 축하할 일이고 저희도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이벤트”라고 말했다. 이달 3일 정부 발표 때 복지부 산하 기관으로 남겨두기로 했던 국립보건연구원을 질병관리청 소속기관으로 존치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서는 정부 발표안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박 장관은 “국립보건연구원이 복지부에 잔류하는 게 복지부의 인력을 보내거나 영역을 확대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종=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