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용산, 서울 대개조 기회...신성장기업 중심 국제업무지역으로 개발을"

[김현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용산역 일대에 아파트만 건설하지 말고 복합개발 필요

수도권 배후 잠재력이 강남북 격차 초래...남북관계도 변수

대학은 행정기능 등만 남기고 3기 신도시로 이전 바람직

삼성 등 GTX 환승역세권, 英 킹스크로스역처럼 만들어야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시중에 자금 유동성이 사상 최대로 풀린 영향이 크다. 정부는 서울 집값 안정 방안의 하나로 용산역 차량정비창 부지에 아파트 8,000가구의 미니 신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심의 알짜 금싸라기 땅을 집값 안정 수단으로 사용해도 되는 걸까.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인 김현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은 1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용산역 일대 개발은 서울 대개조의 소중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단지 아파트단지로만 개발할 게 아니라 신성장산업 혁신기업 등이 들어서는 국제업무 지역으로 복합개발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용산역 일대는 초대형 국가 공원이 새로 들어서고 철도 노선도 4개나 지나는 중요한 곳이므로 이 지역 개발을 대한민국 수도의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 있는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를 찾아 용산과 서울 도시계획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김현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이 1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나 경기도의 강남북 지역 간 격차가 있는 것은 배후 지역의 잠재력 때문”이라며 “남북관계에 획기적 변화가 없으면 이 구조가 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성형주기자김현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이 1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나 경기도의 강남북 지역 간 격차가 있는 것은 배후 지역의 잠재력 때문”이라며 “남북관계에 획기적 변화가 없으면 이 구조가 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성형주기자



-정부가 서울의 집값 안정을 위해 용산역 차량정비창 부지에 아파트 단지 중심의 미니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한다.


△용산에 용산공원이라는 초대형 국가공원이 들어서면 주변 부동산 시장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고속철도와 광역급행철도가 환승하는 초역세권이자 서울역과의 지하화 사업도 검토되고 있어 이 지역 개발은 서울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된다. 예정된 주택 건설뿐 아니라 이러한 잠재력에 걸맞은 용도로의 복합개발이 필요하다.

-용산역 일대를 어떤 방향으로 개발하는 게 좋은가.

△용산의 미래상을 보기 위해서는 런던·파리·도쿄 등 서울이 경쟁하는 국제 대도시들과도 비교해봐야 한다. 런던은 역사도심인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을 보전하고 국제금융중심지 도클랜즈(Docklands)를 개발했다. 도쿄는 황궁 일대를 보전하면서 신주쿠나 임해부도심을 개발했다. 서울의 역사도심인 광화문은 앞으로 더 엄격하고 품격 높게 관리돼야 한다. 용산역 일대는 새로운 도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승역세권 기능을 하면서 신성장산업 혁신기업 등이 들어서는 국제업무 지역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거 기능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정부는 청년주택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은데.

△도시계획은 한 번 하고 나면 바꾸기 어려워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집값 안정을 위해 청년주택을 건설하는 것도 좋지만 대학을 외곽으로 이전해 청년 수요를 줄이는 게 효과적이다. 대학의 기능은 거대한 국제도시 도심에서 이뤄지기 어렵다. 프랑스 파리는 대학을 외곽 신도시로 빼냈다. 중국은 대학타운을 만들어 빼냈고 공동 강의실·실험실 등을 설치해 생산성까지 높였다. 서울에는 대학이 작은 곳을 포함해 무려 63개나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3기 신도시에는 기업보다 대학을 유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학생·동문 등의 반대로 기존의 대학을 이전하기 쉽지 않다.

△대학 전체를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부·연구개발·도서관·산학협력단·청년주택 등 도시적 기능을 집적해 도심형 캠퍼스를 만들고 담장을 헐어 막힌 도로를 개설해주면 부족한 공간도 채워지고 대학 캠퍼스 인근 도시의 활력도 살아날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조건으로 교육시설 용지를 고밀도 개발이 가능한 상업용지로 바꿔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도시 가운데 도심개발의 모델이 되는 곳이 있다면.

△런던의 킹스크로스역(King’s Cross Station)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서울과 비교하자면 광화문 역사도심의 경복궁, 세운상가, 청계천 사이쯤 되는 곳에 유럽국제고속철도의 시발역을 만들면서 런던의 쇠락한 옛 도심을 가장 획기적으로 재생시킨 성공 사례다. 6개의 철도노선이 만나는 유럽 최대 환승 역사에 2,000세대의 주택, 구글·페이스북·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럭셔리 디자인 브랜드, 예술대학 등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도시를 재생한 사례로 칭송받는 곳이다.

-서울에 킹스크로스역처럼 개발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삼성역·서울역북부·청량리 등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지나가는 대규모 환승역 역세권이 해당될 수 있다. 삼성역의 경우 SRT 고속철도에다 GTX 2개 노선, 도시철도 3개 노선, 버스환승시설을 설치하고 지하에 도심공항터미널까지 들어설 수 있도록 추진된다. 도심공항터미널은 체크인·화물위탁·출국심사까지 마치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바로 탈 수 있게 해준다. 서울의 도심공항터미널은 지방 신공항을 건설하는 이상의 효과가 있다.

-역세권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초연결(Hyperconnect) 개념이 중요해진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5세대(5G) 이동통신과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산업에서 업종 구분이 사라지고 초연결이 이뤄진다. 공간에서도 초연결 현상이 나타난다. 다양한 교통수단이 연계·환승할 수 있는 곳에는 굉장한 고급 서비스들이 몰려든다. 이런 곳을 개발해주는 게 중요한 도시정책이 되고 있다. 도시는 이런 대규모 환승역세권을 중심으로 뾰족하게 올라가는 모양을 띠게 될 것이다.

-도시계획 방식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우리나라 도시는 큰 도로변에 고밀도 개발이 이뤄지는 상업 지역이 지정돼 있다. 간선도로변 이면은 주로 2종 일반주거 지역으로 돼 있다. 그래서 빌라와 상가 등이 마구 뒤섞여 있어 엉망이다. 50년 전에 처음 디자인할 때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뉴욕의 맨해튼, 도쿄의 신주쿠 등 전 세계 금융타운의 중심상업 지역은 면적을 기준으로 도시가 계획돼 있다. 도로를 따라 선으로 그어진 도시계획을 네트워크 수준에 따라 면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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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이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집값을 분석할 때는 주택시장의 수급만이 아니라 배후 지역을 볼 필요가 있다. 강남의 배후 도시인 성남·수원·용인·화성 등의 인구는 정보기술(IT) 산업의 지속적 성장 등으로 총 500만명가량에 이른다. 유럽이나 일본의 인구 100만명 이상 도시에는 컨벤션이나 미술관·박물관·호텔 등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의 100만 도시는 이런 기능을 서울에 의존하고 있다. 강남 배후 도시의 사람들이 GTX를 따라 강남에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청량리가 50년째 큰 변화가 없는 것은 포천·연천·동두천·의정부 등 배후지에 그런 기업들이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설과 관련해 35층의 층고 제한을 풀어 공급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서울플랜2030의 높이 관리는 35층 이상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용도 지역과 용도 구성 등에 따라 건축물의 높이 기준을 차등화하는 것이다. 대체로 도심이나 부도심일수록, 상업 지역일수록, 용도를 복합화할수록 높은 층수를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필요하다. 다만 강남 지역의 미래 변화를 전망하면서 좀 더 유연한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모습이 10년·20년 전에 비해 별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이 너무 도시재생과 경관 관리를 위한 규제 중심으로 추진돼 그런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삼성역·서울역북부가 킹스크로스역 역세권처럼 개발되고 용산이 광역중심지가 되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특히 용산공원은 서울 대개조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동작대교에서 후암동으로 연결되도록 계획된 도로가 뚫리면 주변 일대가 크게 바뀔 것이다. 녹지축이 용산공원에서 남산으로 연결되면서 서울의 면모가 일신하게 될 것이다.

-도시 개발로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을 소외 지역에 사용하는 데 대해 논란이 있다.

△네트워크가 좋은 곳은 초고층의 복합 고밀도 개발을 허용해주고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개발 공공기여금을 쇠퇴 지역에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구단위계획 안에서만 쓰도록 한 국토계획법을 고쳐 다른 시·군·구에서도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시 숙원 사업이 강남북 균형 발전인데.

△서울 강북과 경기 강북이 남쪽 지역에 비해 낙후된 것은 배후지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북쪽은 비무장지대(DMZ)에 막혀 있는데 남쪽은 거대한 IT 밸리, 대한민국의 경제 심장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남북 간에 획기적 변화가 있기 전에는 큰 흐름이 변하기 어렵다. 만일 정부가 추진 중인 2032서울평양올림픽이 유치된다면 고양·수색·은평 등이 많이 바뀔 수 있다.

-지방 도시가 쇠퇴하고 있다.

△서울로 집중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 지방 쇠퇴가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일본에서는 세금 부담 때문에 부동산 상속을 거부해 정부가 골치 아플 정도다.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이 여전히 혁신도시 지원에 집중되는 것은 맞지 않다. 광주·대구·부산·대전 4곳을 거점으로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

-도시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유발 하라리가 쓴 책 ‘사피엔스’를 보면 10만년 전에 인류가 삼삼오오 모여 살았다. 1만년 전에는 1만~2만명씩 모여 살다 기원 전후 로마시대에 100만명 규모의 대도시가 형성됐다. 그 후 인구 1,000만명 대도시가 등장했고 지금은 3,000만명 메트로폴리탄이 형성됐다. 인구 규모도 커졌지만 도시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발달된 기술이 사람들을 자꾸 도시로 끌어모은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와 서울대 공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북한도시계획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평양 대도시권 연구, 통일 한반도 인프라 구상 등 통일 이후 북한 도시의 변화 전망을 연구했다. 단국대 사회과학대학장·부동산건설대학원장 등을 거쳐 현재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또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정책심의위원,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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