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3일 오후 10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 서울 강남의 한 도로. 외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방향 감각을 잃은 듯 질주하더니 무언가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신분당선 지하철 공사구간이 있는 곳에 설치된 시설물이었다.
SUV를 운전하던 사람은 50대 자영업자 김모씨. 김씨의 차량이 지나간 자리에는 점멸 사인보드와 가드레일, 펜스가 찌그러진 채 쓰러져 있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김씨는 만취 상태였다.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21%. 운전면허 취소 기준인 0.08%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공사장 시설물이 심하게 파손됐지만 김씨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자신으로 인해 다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보지 않았고, 112에 신고를 하지도 않았다. ‘사고 후 기본’으로 여겨지는 보험 접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발각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자신의 SUV를 놓고 황급히 도망쳤다. 현장 인근에 숨어 있던 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됐다.
망가진 공사장 시설물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는 300만원이 넘는 수리비가 들었다. 술에 취한 김씨가 운전하면서 전후좌우를 잘 살피지 않고, 제동 장치를 제대로 조작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장원정 판사는 지난 9일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사회봉사 160시간과 준법운전강의 수강 40시간도 함께 선고받았다. 김씨는 이 사건 전에도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양상이 비록 대물 피해라고는 하나 극히 위험해 보이고, 그럼에도 김씨가 차량을 방기한 채 인명 피해 여부도 확인하지 않는 등 정황이 상당히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다행히 대인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은 점, 재물 피해자와 합의해 피해자가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유리하게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