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21대 원 구성 협상이 법제사법위원장 배분 문제로 또다시 결렬됐다. 양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26일부터 21일간 협상을 벌였지만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원 구성 합의 데드라인인 15일까지 협상안 도출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여당과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를 개최해 법사위와 기획재정위원회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마쳤다. 통합당은 여당 단독의 상임위원장 표결 돌입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회 본회의에 불참하는 대신 본회의장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여당 단독의 상임위원장 선출을 비판했다. 이처럼 21대 국회 개원부터 시작된 여야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정국이 급속도로 냉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 원 구성을 위한 본회의를 열고 6개 상임위원장에 대한 무기명투표를 실시했다. 앞서 박 의장은 법사위와 기재위·산자위·외교통일위·보건복지위·국방위 등 6개 상임위 위원장만 우선 선출하는 ‘상임위원장 선출의 건’을 안건으로 공고했다. 이들 6개 상임위는 여당이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하는 상임위원장 11개 중 일부다. 박 의장은 본회의에 앞서 “코로나 추경도 신속하게 통과시켜야 한다. 남북관계도 다시 긴장상태로 돌아가고 있다”면서 “신속히 관련 상임위를 열어 논의해야 한다. 더 이상 국회를 공전시킬 수 없다”고 표결절차 돌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통합당 의원들은 본회의 개의 전 본회의장 앞에서 여당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법사위를 강탈하나”와 “야당 되든 여당 되든 법사위는 민주당만 하나”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표결 절차에 앞서 시작된 의사진행발언에서 “오늘은 일당독재가 시작되는 날이다.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줘도 90일이 지나면 여러분(여당)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면서 “72년 만에 역사에 없는 이런 일을 하느냐. 세월이 지나 여러분들이 잘못되면 그 출발선은 오늘이라고 확신한다”고 상임위원장 단독 표결 처리를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같은 의사진행발언 이후 여야 협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다만 통합당 내부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 아니라며 사퇴 의지를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당이 야당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 처리한 것은 앞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이 결렬된 데 따른 것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 의장에게 전 상임위원장을 다 선출해야 한다고 말했고 범위는 의장이 판단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주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일당독재의 문을 열어젖히려 한다”면서 “상임위 강제배정과 일방적 위원장 선임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헌정사로 남을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여야의 양보 없는 대치와 여당 단독 원 구성 추진은 이날 오전부터 감지됐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단독으로라도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 것”이라며 단독 원 구성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사위원장이 야당 몫이라는 그동안의 관행을 언급하며 “거대 여당이 그것을 파기하고 (상임위를) 독점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에 원 구성이 지연된다.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게 많아 검찰과 법원을 장악하려 시도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따라서 국회 원 구성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는 20대 국회의 오명인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를 넘어 국회마비 사태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당이 상임위의 법안심사부터 본회의까지 모두 거부하면서 등원 자체에 대한 전면 보이콧 전략으로 선회할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의 보이콧은 오는 7월15일 시행될 예정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입법과정에서의 진통은 물론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의 무력화 시도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추천위에서 추천한 후보 2명 중 1명을 선택해야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될 수 있다. 또 추천된 후보 2명은 추천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통합당이 야당 몫 2명의 위원을 추천하지 않게 되면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의 정상가동은 불가능해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야당의 보이콧으로 공수처장 추천위가 무력화될 경우를 대비해 국회의장이 교섭단체를 지정해 위원 추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수처장 후보추천위 운영 등에 관한 규칙안’ 발의까지 마쳤다”면서 “여당 단독으로 규칙안을 통과시킬 경우 또 다른 동물국회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용·구경우·김혜린기자 kim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