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이상을 장전하고 SK바이오팜 청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고객들의 문의가 심심치 않게 옵니다. 2014년 제일모직 공모 때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상반기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SK바이오팜의 일반청약이 다가오자 증권사로 고객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청약을 맡은 네 곳의 증권사(NH투자·한국투자·SK·하나금융투자)는 물론 여타 증권사로까지 계좌 개설 등을 묻는 전화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IPO를 담당하는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증거금을 최대 얼마까지 넣을 수 있는지부터 신규계좌 개설, 예상수익률 등까지 세세한 질문이 많다”고 전했다.
현재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지난 2014년 제일모직의 기록을 깰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시 제일모직은 30조원에 육박한 청약증거금이 몰리면서 경쟁률도 194.9대1을 나타냈다. 제일모직의 청약실적은 당시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던 삼성생명(19조8,944억원)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깨지지 않은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SK바이오팜이 넘치는 유동성, 초저금리 등의 환경을 무기로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제기된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증권사별로 최대 청약금액에 차이가 있지만 NH투자증권(005940)의 경우 한 사람이 최대 35억원까지 청약이 가능하다”면서 “바이오 산업에 대한 열기, 저금리와 넘치는 유동성이 맞물리면서 예상 이상의 자금이 들어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바이오·유동성·저금리 3박자 IPO 최고기록 갈아치울까=현재까지 가장 많은 청약증거금을 모은 공모주는 2014년 상장한 제일모직이다. 당시 일반청약자를 대상으로 574만9,990주를 공모했는데 경쟁률이 194.9대1에 이르면서 청약증거금이 30조원 넘게 들어왔다. 증권 업계에서는 SK바이오팜이 최고기록을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영향이 덜한 신약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데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시판허가를 획득한 신약 2종을 보유하는 등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제 분야에서 기술경쟁력이 있는 회사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시중에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점도 공모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코로나19의 여파가 잦아든 3월 이후 공모에 나선 드림씨아이에스·SCM생명과학·엘이티 등이 청약에서 흥행했다. 이들은 일반청약자들에 30억~60억원가량의 공모를 진행했는데 높은 경쟁률로 1조3,000억~2조6,000억원의 청약증거금을 기록했다. 게다가 최근의 저금리 기조로 공모주 투자를 위한 대출비용이 낮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일반적으로 공모주 투자자들은 은행 대출을 통해 준비금을 마련하고 청약이 끝난 뒤 이를 상환하는 방식으로 IPO 공모주에 투자한다.
SK바이오팜의 일반청약자 대상 공모주식 수는 391만5,662주로, 공모가 상단을 기준으로 제일모직의 경쟁률(194.9대1)을 기록할 경우 청약증거금은 19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 IPO 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형 공모주식이 없었고 SK가 전사적으로 추진하는 바이오 회사로 경쟁률이 제일모직을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경우에 따라 제일모직의 청약증거금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고 말했다.
◇공모주부터 CB·BW까지 후끈…과열 부작용도=이 같은 발행시장에 대한 투자열기는 공모주뿐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도 투자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5일 일반청약을 마감한 현대로템 CB다. 당초 시장에서는 일반공모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았다. 회사가 3년 연속 적자를 본데다 주력사업인 철도 분야도 성장성에 한계가 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탓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이자 상장 대기업인 현대로템이 지분 희석 우려가 있는 CB를 발행하는 것 자체도 이례적인 사건에 가까웠다.
하지만 4월 들어 주식시장이 ‘V’자 반등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주식 전환가격은 주당 9,750원에 불과한 반면 주가는 이날 기준 1만5,100원까지 올라 사실상 ‘로또’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한진칼(180640) BW 공모청약도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기대주로 꼽힌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3,00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한진칼은 강성부펀드(KCGI) 등 3자연합이 대거 신주인수권을 인수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주주우선공모 대신 일반공모를 선택했다. 이번에 발행되는 한진칼 신주는 약 331만주로 투자자들은 이 주식을 활용해 향후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발행주관사인 유진투자증권 관계자는 “이번 BW는 공모분리형 BW로, 채권 매매로 일부 손실이 나더라도 워런트(신주인수권) 매매로 이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에 손실에 대한 부담이 작은 상품”이라며 “공모주급 인기는 아니지만 투자자들의 문의가 줄곧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메자닌 투자가 발행기업에는 ‘신의 한 수’일 수 있지만 투자자에게는 자칫 커다란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현대로템의 경우 대북경협주로 주목받으며 주가가 상승했는데 이날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주가가 급변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진칼 역시 경영권 분쟁이 지속될 경우 주가가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한쪽의 승리로 마무리되면 바로 하강곡선을 그릴 수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CB나 BW를 발행하는 기업이라면 유상증자 등의 방법으로는 자금조달을 하기 어려운 곳으로 봐야 한다”며 “투자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김민석·이혜진·김기정기자 se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