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전격 폭파는 북한의 비핵화를 자신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실패한 ‘대북외교’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는 미 언론의 지적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현지시간)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날아간 희망을 집중적으로 비춰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해온 그간 대북 관여 드라이브의 경과를 짚으며 이같이 분석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관계가 ‘실질’보다는 ‘형식’을 우선시하고 정책적 후속 조치보다는 ‘사진찍기’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트럼프 스타일’의 압축판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최근 잇따른 북한의 도발은 미국 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경제 위기 및 백인 경찰의 폭력진압에 희생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사위 사태 등에 가려졌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북한은 연락사무소 폭파를 통해 수 세기에 걸쳐 미국 대통령들을 괴롭혀온 패턴을 반복하면서 미국의 주목을 다시 끌게 됐다고 전했다.
현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표현했던 희망과는 매우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이 WP의 진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역사상 첫 북미 정상 간 대좌였던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과의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자신했다. 트윗을 통해서는 “더는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은 없다”고도 단언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에서와 마찬가지로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축포를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2차례의 정상회담, 그리고 지난해 6월 말 판문점에서 열린 깜짝 회동 등 3차례에 걸친 만남을 가졌지만 실질적 진전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북한을 둘러싼 모든 상황은 아시아 역내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계속 따뜻하게 이야기해온 가운데 최근 이뤄진 북한의 도발에 대해 대응을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대선과 그 외 다른 위기 상황들이 백악관의 신경을 상당 부분 사로잡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북한 문제가 관심권에서 밀릴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한국시간으로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 아직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WP는 이러한 입장 유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 전면에 내걸렸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배너가 이틀 만에 철거되고 한국전 70주년 기념 배너로 교체된 점을 거론, 이러한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관련 소식을 접하고 못마땅함을 나타낸 뒤 이뤄졌다는 언론 보도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