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나날(Darkest Hour). 지난 2017년 개봉된 전쟁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는 영국 전시내각의 수상으로 막 지명된 윈스턴 처칠의 고뇌와 결단을 다뤘다. 말 그대로 영국의 상황은 캄캄했다. 평화만 생각했던 탓이다. 히틀러가 전쟁을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네빌 체임벌린 수상은 대독 유화정책으로 일관했으나 독일은 끝내 전쟁을 일으켰다. 영국의 유럽 원정군은 노르웨이와 프랑스에서 독일군에 연달아 깨졌다. 국론도 갈라졌다. 화평과 항전론이 연일 맞섰다. 전시 내각의 수상을 맡게 된 처칠의 고민도 깊어졌다.
히틀러 등장 이래 독일 경계론을 줄기차게 주장하다 ‘꼴통’으로 몰렸으나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혜안을 가진 리더’로 급부상, 전시내각을 이끌게 됐지만 여전히 적이 많았다. 군사지도자로서 그가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실책만 연발했다는 주장도 많았다. 사실이 그랬다. 장교 겸 종군기자로 참전한 보어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후 탈출해 스타덤에 올라 25세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고 1차 대전에서는 해군 장관과 육군 장관, 전쟁 장관을 고루 거쳤으나 직접 기획한 작전은 하나같이 실패했으니까. 수백만명을 전쟁에 몰아넣은 갈리폴리 상륙작전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미국 신흥 주식재벌의 딸인 모친에게서 자랐어도 재무장관으로서 이렇다 할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던 처칠은 정치권의 의구심과 견제, 패배 일색인 전황으로 가장 힘든 나날을 보냈다. 믿었던 미국의 지원조차 불투명한 상태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처칠에게 호감을 보였으나 실질적인 도움은 줄 수 없었다. 중립법과 고립주의 성향이 강한 미 의회의 벽에 막혔던 탓이다. 가장 어두운 상황에서 처칠은 정면 돌파에 나섰다. 1940년 6월 18일 하원에서 대독 항전 연설로 의회와 국민의 단합을 이끌어냈다.
“프랑스 전투가 끝나고 이제 영국의 전투가 눈앞에 왔습니다. 만일 진다면 이 세계는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모든 가치와 함께 암흑의 심연이 가라앉을 겁니다. 반대로 이겨서 대영제국이 천 년을 더 간다면 후손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바로 그때가 조상들이 보여준 최상의 시간(Finest Hour)이었다’라고…(후략)”. 암흑의 나날을 최상으로 바꾸려던 처칠은 분명 영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처칠의 연설문을 빌려 우리 시대를 말하고 싶다. 청소년들이 우리 세대가 누렸던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천 년 뒤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여길까. Darkest Hour와 Finest Hour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울지 걱정이 앞선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