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영국 옥스포드대와 세계보건기구(WHO), 외신에 따르면 이 대학 피터 호비·마틴 랜드레이 교수팀이 주도한 중증 코로나19 입원환자 임상시험에서 덱사메타손은 인공호흡기 치료군의 사망률을 41%에서 28%로 3분의1, 산소치료군의 사망률을 25%에서 20%로 5분의1 낮추는 효과를 보였다.
이 임상시험에는 1만1,500여명의 환자가 등록했는데 덱사메타손 투여군 2,104명과 덱사메타손을 투여하지 않은 4,321명의 사망률 등 비교분석으로 투여 효과가 명백하다고 판단돼 조기에 종료됐다. 인공호흡기·산소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중등도 이하 코로나19 환자는 덱사메타손을 투여해도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영국에서 진작에 중증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덱사메타손을 사용했다면 최대 5,000명의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인공호흡기 치료 환자 8명 중 1명, 산소치료 환자 25명 중 1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주도한 피터 호비 감염내과 교수는 “덱시메타손은 지금까지 자발적 호흡이 어려운 중증 코로나19 환자의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된 유일한 약물”이라며 “환자 8명을 생명을 구하는 데 드는 약값이 하루 40파운드(약 6만2,000원)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저렴한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매트 핸콕 영국 보건장관은 “덱사메타손을 코로나19 치료제에 곧바로 포함시켜 중증 환자에게 처방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와 WHO는 곧 ‘코로나19 환자 임상지침’에 덱사메타손을 중증 환자에게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등을 반영해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덱사메타손의 이런 효과는 ‘사이토카인 폭풍’ 등 과도한 면역·염증반응을 억제해 폐 등 환자의 장기를 보호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그리핀 영국 리즈대학 바이러스학 교수는 “과도한 염증반응을 억제하는 덱시메타손과 (미국 FDA가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를 환자 치료에 함께 사용하는 임상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 증상의 지속기간을 15일에서 11일로 줄여주는 효과가 확인됐지만 사망률을 줄여줄 만큼 강력한 효과를 보이지는 않았다.
덱시메타손은 1960년대부터 항염증·항류마티스제 등으로 처방돼온 부신피질호르몬제. 류마티스·통풍성 관절염, 알레르기성 천식·아토피피부염·비염, 홍채염·각막염, 궤양성 대장염 등 다양한 자가면역성 염증과 부신피질기능부전증, 혈소판감소증, 백혈병·호지킨병(일시적) 등 치료에 쓰이고 있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안전하고 물질특허 장벽도 없다. 유한양행·부광약품·경동제약·영진약품·일성신약·휴온스 등 여러 제약사들이 정제·주사제·연고·점안액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는데 정제의 경우 1정(덱사메타손 0.5~0.75㎎)당 가격이 20~30원대로 매우 저렴하다.
하지만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임상연구 결과가 전문가 그룹의 ‘동료 검토’를 거쳐 논문으로 출판되지 않은 상태여서 연구진과 영국 정부의 언론 발표를 그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시급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의학학술지 ‘랜싯’ ‘NEJM’에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관련된 논문이 실렸다가 데이터 신뢰도 등의 문제가 제기돼 저자들의 요청으로 철회되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의 캐스린 히버트 박사는 “덱사메타손이 중증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라면서도 “현 시점에서 기존 치료방법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대 그로스만의대 샘 파르니아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 환자를 스테로이드제 치료군과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지 않는 치료군으로 나눠 대규모 임상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덱사메타손이 면역계의 바이러스 공격을 억제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덱사메타손은 다양한 질환에서 염증을 억제하기 위해 쓰이며 단기간 국소적 사용시 극적인 효과를 보이지만 장기간 사용시 면역억제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