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손자는 증조할아버지와 그 장녀 사이에 관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민법상 친족이라는 신분관계를 가졌다면 일률적으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청구할 이익이 있다고 인정해온 기존 대법원 판례를 40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18일 최모씨가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독립유공자 고(故) A씨의 장녀인 고 B씨의 자녀 C씨(A씨의 손녀)는 광주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등록 거부 처분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A씨의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A씨의 장남 고 D씨의 손자인 최씨(A씨의 증손자)는 “B씨는 A씨의 친생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독립유공자 A씨의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하기 위해 검사를 상대로 A씨와 B씨 사이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B씨가 A씨의 자녀가 아니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심은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독립유공자의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하려면 나이가 가장 많은 손자녀여야 하는데, A씨의 다른 손자녀가 생존해 있으므로 증손자인 최씨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판결로 독립유공자 유족의 지위를 취득할 수 없다”며 1심을 취소하고 각하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2심 판단을 지지했다. 재판부는 “2005년 민법 개정으로 호주제가 전면적으로 폐지되면서 개인을 중심으로 가족관계 변동 사항이 기록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도 이미 핵가족화돼 민법 제777조의 친족이 밀접한 신분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법률적, 사회적 근거가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생자관계의 존부를 다툴 수 있는 제3자의 범위를 넓게 보는 것은 신분 질서의 안정을 해치고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민법 제777조에서 정한 친족(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라는 신분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 종전 대법원 판례는 변경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은 “대법원 판례의 변경에 관한 다수 의견에 찬성하지만, A의 증손자로서 직계비속인 최씨는 당연제소권자인 ‘부 또는 처의 직계비속’에 해당하므로 원고적격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다만, 2심은 친생자관계가 존재한다는 판단도 했으므로 상고를 기각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이러한 여러 사정을 반영해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고,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의 원고적격 범위를 합리적으로 재조종해 이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하급심 실무의 지침이 되도록 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