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양양 왕복 405㎞ 가능할까.”
한국GM 쉐보레의 순수 전기차 ‘2020년형 볼트 EV’를 시승하기 전 덜컥 걱정이 앞섰다. 걱정은 기우였다. 볼트 EV는 400km를 넉넉하게 완주했다. 전기차를 타기 전에는 항상 불안감이 든다. 특히 장거리 운행이 문제다. 운행 중에 배터리 관리를 잘못할 경우 까딱하면 도로 한 가운데서 발이 묶일 수도 있다. 시승 전 쉐보레측이 밝힌 볼트EV의 주행 가능 거리는 410㎞였고 실제 달려야 할 거리는 405㎞ 남짓했다. 에어컨을 끄고 달려야 하나, 중간에 배터리가 부족하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러나 쉐보레 관계자는 “문제 없으니 마음껏 타보라”며 볼트EV 자동차 키를 넘겨줬다.
지난 16일 볼트EV를 타고 서울 시그니엘 호텔에서 강원도 양양군 낙산해수욕장까지 405㎞를 달려봤다. 낙산해수욕장까지는 직접 운전했고 돌아오는 길은 동승자가 운전대를 잡았다. 전체 시승 코스는 서울 도심 주행과 양양고속도로, 국도, 한계령 와인딩 등 다양하게 구성됐다.
새로 나온 볼트EV 외관은 전 모델과 큰 차이가 없었다. 듀얼포트 그릴에 음각 문양이 추가되는 등 디테일이 바뀐 수준이다. 차체가 아담해 남녀노소 부담없이 운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관과 달리 막상 볼트EV에 탑승하면 넉넉한 실내에 한 번 놀라게 된다. 성인 남성 2명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았는데도 어깨 공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또 차량 천장이 높아 쾌적한 기분이 들었다. 외관의 크기에 비해 넉넉한 뒷좌석도 장점이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여유있게 조정했는데도 뒷좌석 레그룸에 주먹 두 개 정도는 들어갈 공간이 나왔다.
운전석에 앉아 본격적인 주행을 시작했다. 널찍한 컬러 디스플레이가 먼저 눈에 띄었다. 2020년형 모델부터 디스플레이 크기를 10.2인치로 키운 덕에 지도를 보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화면이 다소 누워있어 내비게이션을 볼 때는 전방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게 아쉬웠다.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니 경쾌하게 치고 나갔다. 초반부터 최대 토크가 나오는 전기차답게 초반 달리기 성능은 내연기관 스포츠카 저리가라였다. 볼트EV에는 150㎾급 고성능 싱글 모터 전동 드라이브 유닛이 탑재됐다.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36.7㎏·m의 성능을 뽐낸다. 체구는 조그마하지만 뿜어내는 힘은 싼타페 2.0 가솔린 터보와 맞먹는다.
낙산해수욕장으로 가는 내내 기어를 ‘L’로 놓고 달렸다. 원 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한 기어 모드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바로 회생제동이 걸리며 따로 감속 페달을 밟지 않아도 차를 완전히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운전 방식이다. 여기에 쉐보레가 강조하는 스티어링휠 왼편 뒤쪽에 달린 ‘리젠 온 디맨드’ 버튼까지 누르면 더욱 강한 회생제동이 가능하다. ‘L’모드에 리젠 온 디멘드 버튼까지 누를 경우 감속이나 제동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효율이 더 높아진다. 고속도를 주행할 때는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도심 주행이나 내리막길을 달릴 때 발전 효율이 높아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계령 내리막길에서 리젠 온 디맨드 버튼을 누르며 운전하자 주행 가능거리가 30㎞ 가량 늘어났다. 또 전기차 특성상 무게 중심이 하부에 있어 코너링 감각도 탁월했다. 내연기관 차량을 타고 한계령 와인딩을 하게 되면 차량이 좌우로 쏠려 무서운 순간도 있지만 볼트EV는 바닥에 딱 붙어서 재빠르게 코너를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행성능만 놓고 보면 전기차를 안 탈 이유가 없다.
시속 120㎞ 이상 고속 주행을 수차례 반복하고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빵빵하게 켜고 달려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주행 가능거리는 아직 170㎞ 남짓 남아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려면 200㎞ 가량을 달려야 하는데 30㎞가 모자랐다. 쉐보레 관계자들에게 “추가 충전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하고 물어보니 “이 정도는 괜찮다. 충분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에게 차량을 넘겨받은 동승자도 서울로 돌아갈 길이 불안한지 “길 한복판에서 볼트EV가 멈추게 되면 좋은 추억이 생긴 걸로 하자”고 말했다. 기자가 배터리를 많이 소모한 덕에 동승자는 돌아오는 길 내내 감속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고 회생제동에만 집중했다. 결론은 서울에 도착하고도 볼트EV의 주행 가능거리가 30㎞ 가량 남아돌았다. 170㎞였던 볼트EV의 주행 가능거리가 회생제동을 적극적으로 하니 230㎞로 늘어난 셈이다. 한국지엠 쉐보레가 볼트EV의 1회 충전 주행거리 414㎞와 강력한 회생제동 기능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볼트EV의 가성비도 만족스러웠다. 경쟁 차종으로 꼽히는 코나 일렉트릭의 가격은 4,645만~5,201만원이다. 볼트EV는 이보다 저렴한 4,593만~4,814만원 선이다. 이전 모델에 비해 배터리 성능이 향상돼 공식 주행가능거리가 30㎞ 가량 길어졌는데도 가격은 그대로다.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볼트EV는 1회 충전으로 414㎞를 주행할 수 있는 소형 전기차로 업계를 다시 한번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