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20대 국회에서 불발됐던 금융 관련 규제법안들이 연일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달 초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낮추는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분쟁조정 시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를 정지하는 이른바 ‘자살보험금방지법’, 삼성생명의 계열사 주식 보유량을 대폭 제한하는 보험업법 개정안 등이 본격적인 원 구성 전부터 입법 추진되면서 금융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1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보험업법·상법·전자금융거래법·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행법 등 15건의 금융 관련 법 개정안을 일괄 발의했다. 박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도 정무위원회에 배치되면서 해당 법안들의 개정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법안은 20대 국회에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것으로 금융권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법안들이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인 것이 보험사의 자산운용비율 산정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바꾸고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지난 국회에서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자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을 겨냥한 이른바 ‘순환출자제한법의 종결판’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보험회사는 총자산의 3%까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데 취득원가로 계산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은 3%가 넘지 않지만 삼성전자 시가로 바꿀 경우 3%를 훨씬 초과해 계열사 주식 매각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은행 및 카드업계에서는 이자제한법 개정안에 주목하고 있다. 이 법안은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내리고 이자의 총액이 원금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대 국회 때도 송갑석 당시 민주당 의원이 법정 최고금리를 22.5%로 인하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은 당시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이번 국회에서 최고금리 인하 폭을 더 키운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 의원실에서는 1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저신용·저소득 서민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발의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짙다. 최고금리 인하가 서민들을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모는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카드 현금서비스의 경우 부산은행은 신용등급 4등급 이하부터 20% 이상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해 최고금리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당장 4등급 이하 대출을 조일 가능성이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고금리를 낮추는 것은 입법 취지와 달리 6~10등급 저신용자들이 피해를 보게 돼 쉽지 않은 문제”라며 “만약 법안이 통과되면 1~3등급도 덩달아 금리를 낮춰야 해 전체적으로 금융권의 대출이 빡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자제한법 외에 20대 국회에서 불발됐던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 개정안’도 업계가 주목하는 법안 중 하나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금융위기 같은 비상시를 대비해 대형 금융기관들이 사전에 정상화 방안을 작성, 금융감독원장에게 제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200만원인 선불전자지급수단 충전한도를 300만~500만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전자금융법 개정안도 카드사에서 우려하는 법안 중 하나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법안을 준비 중인 가운데 카드사에서는 당장 체크카드 이용객의 이탈을 우려한다.
업계는 이미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이면서도 달라진 구도에 적지 않게 긴장하는 모습이다. 177석에 달하는 거대 여당이 탄생한 만큼 야당의 견제 속에 상당수 규제법안들이 폐기됐던 20대 국회와 달리 법제화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년 3월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대한 보완조치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여당은 총선 공약집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 소비자 집단소송제 등의 도입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모든 금융사가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데 21대 국회에서는 종합규제 선물세트가 기다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은영·김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