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가을 신상 주문 밀려들땐데"...일감 마른 봉제업체

1분기 의류소매 판매 24%↓

2분기도 매출회복 더뎌지며

FW 발주 못하는 업체 속출

일부는 마스크 등 주력 전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패션 브랜드 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가을·겨울 신상품 수주를 기다리는 봉제업체로 그 불똥이 고스란히 튀고 있다. 백화점 등에 납품하는 패션 브랜드는 이맘때쯤 봉제 업체들에게 가을·겨울 신상품 주문을 해야 하지만, 수익이 쪼그라들어 작년처럼 대규모로 발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발주를 하더라도 물량은 작년 수준에 크게 못 미쳐 봉체업체들도 동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21일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섬유패션산업 생산지수는 67.9로 전년 동기보다 21.8%가 줄어들었다. 생산지수는 지난 2015년을 기준(100)으로 한 생산 현황을 지수화한 통계로, 지난해 평균은 85.9였으나 올해 들어 1월(84.1), 2월(73.3), 3월(78.9)에 이어 급락세를 보였다. 올 1·4분기 의류 소매 판매액도 10조 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13조 6,000억원)보다 24.6% 감소했다.

이렇다 보니 백화점 등을 통해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 실적도 악화일로다. 코로나19가 진정되는가 싶더니 다시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2·4분기 실적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패션 브랜드들이 돈을 못 벌어 가을·겨울 신상품 출시를 위한 발주를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청에 해당하는 봉제업체에 가을·겨울 신상을 발주하려면 발주액의 30% 정도를 선금으로 지불해야 하지만, 실탄(자금)이 부족한 업체들은 발주 자체를 머뭇거리고 있다. 백화점에 납품하는 한 의류업체 대표는 “봉제 공장에 줄 선납금이 부족해 (올 가을·겨울) 신상품 발주 물량을 줄이거나 (더 싼) 다른 업체를 알아보고 있다”며 “일부 업체들은 발주 자체를 할 수 없거나 주문 제품을 찾아가지 않을 정도로 자금난이 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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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겨울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신상품 기획과 발주는 6~7월 두 달에 이뤄진다. 봉제업체 관계자는 “선납금이 들어와야 부자재도 구입하고 생산을 시작하는데 현재는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원청 업체들이 (발주를 줄여) 선납금이 급감하고, 이에 따른 봉제업체들도 연쇄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는 지난해 주문 물량과 정부 정책자금 지원을 받아 어떻게든 살아남았지만, 하반기에는 유동성 위기에 몰려 폐업하는 업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감도 확산되고 있다.

패션업계는 추가적인 정책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패션산업협회 관계자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3~4월 받아 놓은 정책 자금을 인건비 등으로 사용해 자금 여력이 최악”이라며 “하반기 신상품 발주를 위해 선납금이 필요한데 은행에서는 추가 대출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패션업계에서는 하반기 신상품 발주를 위한 준비를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추가로 지원해 주거나 선납금 확보를 위한 추가 대출을 용이하게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패션·봉제업체는 이런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마스크와 방호복 제작으로 살길을 모색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가을·겨울 신상품을 출시해도 매출이 살아 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본업보다 부업에 더 열심인 셈. 실제 쌍방울이나 BYC, LF, 신세계인터내셔날, 애플라인드 등은 보건용 마스크나 패션 면 마스크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패션업체 관계자는 “의류 생산은 절반으로 줄이고 하반기 홈쇼핑에 판매할 신상품 물량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 생산 라인이 마스크를 제작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로 백화점을 제외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패션업체 대표는 “백화점에 납품해도 똑같은 중소기업들인데, 이번에 재난지원금 효과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1,23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피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섬유제품 업체의 경우 100%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다’고 답했다. 전체 산업 평균이 76.2%인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섬유패션업계의 피해가 더 심각함을 보여준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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