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김정은, 치고 빠지기식 南압박전략...대남확성기도 일단 철거

[군사행동 돌연 보류한 김정은 속내는]

심리전 南에 불리...美 전략자산 부담

金 '보류' 표현...무력도발 재개 위협

美 국무부 "北 핵활동 게속" 대북압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자신의 키보다 긴 지시봉을 들고 군 간부들을 지도하고 있다./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자신의 키보다 긴 지시봉을 들고 군 간부들을 지도하고 있다./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주재하고 돌연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

김 위원장이 전례가 없는 예비회의를 열고 ‘보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언제든 군사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제정 등 남한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분석된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예비회의에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성된 최근 정세를 평가하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회의에 제기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군사행동을 보류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대남 적대 노선을 취한 이후 한반도 정세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북한이 예고한 대남삐라(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통한 심리전은 전략적으로 불리하다는 현실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으로 철거됐던 북한군 확성기는 성능이 매우 나쁘고 이마저도 전력난으로 자주 끊겨 남측에 타격을 거의 주지 못했다. 확성기 방송을 통한 심리전이 전개될 경우 남측의 장비가 우수하기 때문에 수령의 권위를 가장 중시하는 김정은 정권의 부담이 더 클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4일 오전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한 야산 중턱에 어제까지 설치돼있었던 대남 확성기가 철거돼있다./인천=연합뉴스24일 오전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한 야산 중턱에 어제까지 설치돼있었던 대남 확성기가 철거돼있다./인천=연합뉴스


실제 우리 군에 따르면 북한은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일대 40여곳에 설치한 대남 확성기를 다시 철거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호 통일부 차관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한이 최전방 지역에 재설치했던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모두 철거한 것으로 보고했다고 참석자인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북한이 대남 무력도발을 예고하면서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 자산을 투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자 북한이 가장 위협을 느끼는 B-52 전략폭격기를 지난 17일과 19일 연이어 동북아에 전개했다. 기체당 100여발의 폭탄을 싣고 작전지역에 투입되는 B-52는 베트남 전쟁(1960~1975)과 1991년 걸프전에서 적진을 초토화하며 맹위를 떨쳤다. 6·25 전쟁 때 B-52의 융단폭격을 맞고 큰 타격을 입은 북한은 현재까지도 폭격에 대한 공포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한미연합훈련이 확대되고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로 투입되면 이에 대응해야 하는 김 위원장도 골치가 아플 것”이라며 “연락사무소 폭파로 남측에 충격을 준 만큼 정세를 지켜보고 어떻게 나갈지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B-52 전략폭격기의 모습./연합뉴스B-52 전략폭격기의 모습./연합뉴스


다만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대남 보복전을 선전한 만큼 남측에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 등 상응 조치가 없을 경우 군사행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아무리 북한이 독재정권이지만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을 만들면 김 위원장은 이를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당 중앙군사위를 개최할 수 있는 만큼 남측에서 만족할 만한 반응이 없으면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안건에 다시 올릴 것이란 해석이다. 실제 중앙통신은 이날 예비회의에서 “당중앙 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회의에 상정시킬 주요 군사정책 토의안들을 심의하였으며 본회의에 제출할 보고, 결정서들과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들을 반영한 여러 문건들을 연구하였다”며 군사력 증진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의회에 제출한 ‘2020 군비통제·비확산·군축 합의와 약속의 준수 및 이행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큰 우려를 표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와의 대북제재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압박전술로 관측된다. /박우인·김정욱기자 wipark@sedaily.com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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