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기소 타당성을 판단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26일 열렸다.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의견을 낼 경우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을 기소하는 데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그동안 수사과정이 무리했다는 비판의 역풍에 직면하게 된다. 반면 기소가 타당하다는 의견이 나오면 한 차례 기각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것까지 검토하는 등 막판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수사심의위 현안위원회 위원들은 검찰 수사팀과 삼성 측 변호인들의 A4용지 50쪽 분량의 의견서를 검토하고 양측의 구두변론까지 듣고 결론을 내렸다. 수사팀에서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48·사법연수원 32기) 부장검사, 의정부지검 김영철(47·33기) 부장검사, 최재훈(45·35기) 부부장검사가 출석했다. 삼성 측에서는 굵직한 ‘특수통’ 검사 출신인 김기동(56·21기) 전 부산지검장, 이동열(54·22기)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과 김앤장 변호사들이 출석했다.
양측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을 보고받고 지시했느냐는 핵심 쟁점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앞서 이달 초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와 같은 쟁점이다. 단 이번에는 기소의 타당성을 놓고 양측의 공방이 진행된 만큼 실질심사에서 보여준 양측의 전략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심의위에서 검찰은 복잡한 증거를 설명하기보다 장기간의 수사를 거쳐 현재 기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외부 전문가들인 현안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복잡한 증거 설명과 혐의 입증을 시도하기보다 기소를 위한 설득에 주력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삼성 측은 검찰이 주장하는 시세조종과 회계사기 등 혐의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보고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유에 ‘기본적인 사실관계만 소명됐다’고 한 점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심의위 결론에 따라 검찰의 향후 행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안위원들이 불기소가 타당하다고 결정할 경우 검찰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진다. 검찰은 지난 2018년 제도가 시행된 후 총 8차례 소집된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모두 따랐다. 수사심의위 결론은 ‘권고’일 뿐이지만 이 같은 전례 때문에 검찰이 반대되는 사법 처리를 하는 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칫 무리하게 영장을 재청구하거나 기소에 나서다가는 과잉 수사와 기소라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수사심의위가 ‘기소’를 결정하면 한동안 주춤했던 삼성 합병 의혹 수사는 막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수사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7대7 동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검찰이 기소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앞서 수사심의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이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과의 친분을 이유로 직무 회피를 신청해 선임된 현안위원 15명 중 1명이 위원장 대행을 맡았다. 수사심의위 운영규칙에 따라 위원장 대행은 심의에 참여하지 못해 실제 의결은 14명의 위원들이 한다. 수사심의위는 만장일치 결론을 목표로 하지만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는데 7대7 동수가 나올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부결이 나오면 타당성을 수사심의위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니 검찰은 기소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법조계 안팎에서는 수사심의위의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와도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방대한 증거자료와 진술을 확보해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의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 청구는 기소하겠다는 전제에서 하는 것인데 수사팀이 이를 번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