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포천의 신설 A골프장을 처음 찾은 김태호(45)씨는 흰색 티 마커가 놓인 화이트 티잉구역이 홀마다 두 개씩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두 개의 화이트 티잉구역 사이 거리가 홀에 따라 10~30m나 돼 코스 전장의 차이는 상당해 보였다. 동반자 사이에서는 이날 사용할 티잉구역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이 골프장에서는 시니어용 또는 골드라는 명칭 대신 ‘레귤러1’ ‘레귤러2’ 티잉구역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시니어 티잉구역이 사라지고 있다. 대다수 골프장에서는 긴 순서대로 블랙, 블루, 화이트(레귤러), 골드(시니어), 레드(여성) 등 여러 개의 티잉구역을 운영한다. 하지만 최근 일부 골프장을 중심으로 시니어 티잉구역의 색깔 구분을 없애는 곳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 골프장 관계자는 “시니어 티잉구역 사용을 달가워하지 않는 장년층 골퍼들을 위해 티 마커를 흰색으로 바꿨는데 반응이 좋다”면서 “젊은 층들 가운데도 골프 기량에 맞춰 앞쪽 티잉구역을 쓰는 경우도 많아 진행이 원활해지는 예상 밖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골프장에 따라 시니어용 티잉구역과 레귤러 티잉구역의 색깔을 똑같게 하거나, 시니어용 티잉구역을 흰색으로 하고 레귤러 티잉구역을 퍼플 등 다른 색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중장년에게 레귤러 티잉구역을 쓰는 ‘젊은 골퍼’라는 자존심을 북돋우기 위해서다.
골프 마케팅에서 ‘시니어’는 금기어로 통한다. 용품 브랜드들은 제품 설계부터 중장년층의 심리를 반영하면서도 시니어용임을 밝히지 않는다. 아이언의 로프트를 표준 각도보다 낮게 만드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같은 번호의 클럽이라도 로프트가 세워진 제품으로 더 긴 샷 거리를 낼 수 있다. 반면 드라이버는 표시 로프트보다 실제 로프트를 더 높인 제품이 많다. 로프트가 높으면 볼을 띄우기 수월하지만 13도 등 높은 각도가 표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제품 라인 구분에서 연령대 기준을 지우는 것도 하나의 추세다. 나이 대신 스윙스피드나 핸디캡 등을 선택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편안한 플레이냐 진지한 경기력이냐와 같은 골프 지향점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샤프트의 강도를 분류할 때에도 A(아마추어)나 L(여성) 대신 일반적인 강도를 뜻하는 R(레귤러) 플렉스를 R1, R2 등으로 세분해 표시하는 제품이 늘고 있다. 약한 샤프트를 사용하면서 주눅이 들거나 눈치를 봐야 했던 시니어 골퍼를 고려한 것이다. 국산 샤프트 제조업체 두미나가 새롭게 개발한 오토플렉스 샤프트도 ‘시니어존심’에 어필하며 인기를 모은다. 신소재와 독자적인 설계로 강도의 경계를 허문 것이 특징이다. R·S·SR 등의 구분이 없어 30g대·40g대·50g대 등 3가지 중 힘에 맞는 무게만 선택하면 된다.
골프의류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트렌드는 슬림핏과 무채색, 빅 로고 등이다. 과거 편안한 사이즈와 원색, 알록달록한 패턴(무늬)을 선호하던 시니어 골퍼들의 취향이 확 바뀌고 있다. 2040세대에 인기가 높고 두터운 마니아 층을 보유한 타이틀리스트와 PXG가 골프의류의 유행을 이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브랜드는 블랙, 화이트, 네이비블루, 그레이 색상의 아이템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는 중이다. 정통 골프 브랜드의 의류가 성공을 거두면서 중장년 층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의류 전문 브랜드들 역시 동조하는 분위기다.
골프용품 업체 한 관계자는 “60~70대는 여전히 젊고 구매력도 있다”며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기는 골프의 시장 특성상 중장년의 자존감을 높이는 마케팅은 장기적으로도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