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7월2일, 캐나다 해양수산부 장관 존 크로즈비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랜드 뱅크스 어장의 대구 어업을 금지합니다.” 어업과 가공공장의 3만5,000여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든 ‘대구 어획 금지(Cod Moratorium)’의 이유는 간단하다. 어족 고갈 위기. 대구는 서양인들의 국민 생선이었다. 대구(cod)보다 ‘생선(fish)’으로 불릴 만큼 많이 잡고, 먹었다. 그랜드 뱅크스 지역은 중세 이래 최대의 대구 어장. 개체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물 반, 대구 반’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번식기에 정자를 뿌리면 바닷물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많았다는 기록도 있다.
대구는 기름이 많지 않아 상어 같은 포식자의 위협도 받지 않았다. 대신 인간은 담백한 맛에 사로잡혔다. 무진장 잡아 요리해 먹고 말려서 저장음식으로 삼았다. 바이킹은 말린 대구를 선창에 널빤지처럼 쌓아두고 먹었다. 보관하고도 남은 대구는 밭에 뿌렸다. 비료로 활용한 것이다. 어부 출신의 저널리스트 마크 쿨란스키가 저술한 ‘대구’에 따르면 누가 어장 주도권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와 지도가 바뀌었다. 영국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것도 풍족한 대구 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 어획에 대한 영국의 간섭과 세금 부과는 식민지인들의 분노와 미국 독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까지 대구를 둘러싼 분쟁은 여전하다.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대구 조업권을 놓고 20세기에만 세 차례 전쟁을 치렀다.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미군기지 폐쇄, 소련제 전투기 구매라는 카드까지 내세우며 어장을 지켰다. 세계 각국이 경제수역을 3해리에서 12해리, 200해리로 늘린 이유도 대구 어장 보호에 있다. 캐나다 역시 처음에는 경제수역을 확대하면 대구 어장을 독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른 나라 어선을 쫓아냈어도 어획액은 갈수록 떨어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남획에 몰두한 결과다.
증기 동력의 출현과 냉장·냉동기술 발전, 어군탐지기로 무장한 대형 선박들이 계절과 밤낮 구분 없이 잡아들이니 씨가 마를 수밖에. 1968년 연간 200만톤으로 정점을 찍었던 어획량은 10만톤 수준으로 떨어졌다. 좋아질 조짐은 전혀 없다. 기후변화와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대구의 먹이인 플랑크톤마저 줄어드는 판이다. 2048년께면 지구촌의 어족자원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음울한 전망도 있다. 고갈은 남의 일이 아니다. 조기와 명태가 이미 우리의 서해와 동해를 떠났다. 후손들이 우리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지 두렵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