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외자 유치 효과는 온데간데…먹튀·범죄도피 악용되는 투자이민제

투자이민제 도입 10년…외국인들은 5년 기한만 채우고 떠나

투자효과 퇴색되고 영주권만 남발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투자이민제가 도입된 지 10년. 관련 영주권자는 지난해 1,500명을 넘겼지만 정작 투자금은 빠져나가 결국 투자 효과는 퇴색되고 문턱이 낮은 영주권만 남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먹튀’는 기본이고 외국인의 국외도피 등 범죄에 악용된 사례까지 확인됐다.

제주시 노형동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제주시 노형동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6일 법무부에 따르면 투자이민제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한 외국인은 1,560명(올해 4월 기준)에 달했다. 유형별로는 부동산 투자이민 1,489명, 공익사업 투자이민 71명 등이다. 투자이민제는 외국인이 특정지역(제주·인천·강원)의 부동산 또는 공익사업에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하면 거주 비자(F-2)를 내주고 5년이 지나 조건을 충족하면 영주권(F-5)을 부여하는 제도다. 부동산 투자이민제는 지난 2010년, 공익사업 투자이민제는 2013년부터 시행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투자이민제를 통해 국내 체류자격을 얻은 외국인의 90% 이상은 중국인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실제 투자이민제로 영주권을 받은 외국인이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는 중국계 자본의 제주도 부동산 투자이민이 본격화한 2013년 이후 ‘5년 기한’를 채운 2018년과 일치한다. 제주도에는 투자이민을 목적으로 한 부동산 투자가 2013년과 2014년 각각 667건(4,532억원), 508건(3,473억원) 이뤄졌다. 5년여가 지난 2018년과 2019년 영주권을 취득한 외국인은 누적으로 각각 545명, 1,434명을 기록했다.

0715A27 부동산투자이민제


하지만 부동산 투자이민 금액은 2015년 1,014억원, 2016년 1,493억원, 2017년 926억원, 2018년 620억원, 2019년 309억원 등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영주권만 받고 투자금을 바로 회수하는 ‘먹튀’ 사례도 적지 않다. 2017년에는 부동산 투자이민제로 영주권을 받은 중국인 A씨가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제주지법에 부동산 매매계약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동산보다 투자금 회수가 쉬운 공익사업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공익사업 투자이민 건수는 지난해 120건(600억원)으로 2017년(39건·190억원), 2018년(91건·445억원)에 이어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커트라인 5억' 턱걸이 투자 대다수…"검증도 부실"
# 아이돌그룹 빅뱅 멤버 승리,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와 함께 강남 클럽 ‘버닝썬’ 및 주점 ‘몽키뮤지엄’ 자금 11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입건된 대만인 린사모. 외국인인 린사모가 한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이유는 투자이민제를 통해 F-2비자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F-2비자를 악용한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주도 리조트 투자를 빙자해 중국에서 유사 수신사기 행각을 벌인 뒤 한국으로 도피한 중국인 사기단 5명이 적발돼 지난 2018년 본국으로 송환된 사례도 있다. 이들은 2013~2015년 중국 뤄양시에서 무허가 투자회사를 설립한 뒤 제주 유명 리조트를 인수하고 휴양단지 건설을 추진해 연 18%의 고수익을 지급하겠다며 중국인 71명을 속여 1,576만위안(약 25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송도국제도시 전경. /사진제공=인천경제자유구역청송도국제도시 전경. /사진제공=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이민투자자 열 중 아홉은 중국인


투자이민제가 시행된 지 10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검증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외국인이 일정 금액을 유치하기만 해도 거주권이 부여되고 5년 이상 시간이 지나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만큼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금융기관과 연계해 나름대로 사전 검증을 하고 있지만 모든 신청자에 대한 사후 관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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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투자이민제를 활용하는 대다수가 중국계인 만큼 중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투자 규모가 영향을 받는다. 이민정책연구원은 ‘2018년 한국의 이주동향’ 보고서에서 “이민투자자의 90% 이상이 중국인임을 고려하면 이민투자자 증감은 중국 정치·경제 환경에 좌지우지된다”고 분석했다. 2017년에도 국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으로 한중관계가 급속히 나빠지고 중국의 외환관리가 엄격해지면서 투자이민이 급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부동산 투자이민의 경우 중국인들의 제주도 투자가 본격화된 2013년 4,531억원(667건)과 2014년 3,477억원(509건)에서 추세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351억원(51건)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민정책연구원은 “해외의 경우 경제적 측면에서 낙후된 지역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특별히 투자를 유인할 필요가 있는 지역에서는 금액을 낮추는 등 기준을 완화하고 있다”며 “현재 투자이민제도를 비교 평가하고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원 알펜시아 리조트. /사진제공=강원도개발공사강원 알펜시아 리조트. /사진제공=강원도개발공사


‘원금보장’ 공익사업 투자이민 늘어

서울경제가 법무부에서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동안 투자된 금액의 평균 투자액을 분석한 결과 부동산 투자이민의 경우 평균 7억4,397만원, 공익사업 투자이민의 경우 4억6,956만원이 투자됐다. 거주권 및 영주권 취득을 위한 커트라인인 5억원에 수렴하는 값이다. 공익사업 투자이민의 금액이 적은 이유는 은퇴자에 대해서는 거주·영주권 취득을 위한 투자 최소액을 3억원까지 낮춰줬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이민의 인기도 급격히 식고 있다. 제주도에 대한 중국인들의 투자 열기가 식어버린데다 영주권을 얻은 후 투자금 회수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자대상 부동산이 제한되면서 나중에 매매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제주도는 개발사업 승인을 얻은 관광단지 및 관광지 내 휴양목적 체류시설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4월까지의 올해 부동산 투자이민 신청은 단 2건에 그쳤다.

그나마 공익사업 투자이민의 경우 금액이 부동산보다 낮은데다 손실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공익사업 투자이민은 법무부가 위탁한 한국산업은행 운용 공익펀드에 외국인이 기준금액 이상 예치 시 5년 후 영주권과 함께 원금만 상환하는 ‘원금보장·무이자형’과 투자에 따른 손실과 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손익발생형’으로 나뉜다. 법무부에 따르면 투자이민 신청자 가운데 절대다수가 ‘원금보장·무이자형’으로 가입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 속 사실상 투자유치 효과가 없는 속 빈 강정이라는 분석이다. 투자이민제가 ‘거주·영주권 자판기’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권혁준·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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