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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코로나 이후 농생명이 화두…대학이 기술사업화 창발 기지 돼야"

[이기원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국내 대학 R&D예산 많이 쓰지만 SCI논문·특허만 양산

미·중·유럽은 물론 일본 대학조차 스타트업 정신 무장

대학 연구자가 기업과 개방형 혁신체계 구축 필요

우리도 4차 산업혁명 창업·기술이전 드라이브 걸고

산업 선도인력 양성...기초부터 응용·개발까지 끝내야

이기원 서울대 교수가 최근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의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약콩을 활용한 건강식품과 의약품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이호재기자이기원 서울대 교수가 최근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의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약콩을 활용한 건강식품과 의약품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이호재기자






지난 7일 경기도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의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이기원(46·사진)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가 이끄는 ‘창발센터’와 ‘밥스누’ 연구원들이 빅데이터 기반의 뇌파측정기, 유전체분석기, 스마트팜, 약용 소재 추출발효기 등을 활용해 바이오 식·의약품 연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연구실을 안내하던 이 교수는 연신 “대학의 원천연구를 기반으로 기업과 함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개발(R&D)에 나서야 한다”며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어 “미국·유럽은 물론 중국·일본 대학도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창업을 활성화하며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국내 대학이 과학기술논문색인(SCI)급 논문과 특허만 양산하는 현실에서 산학협력을 통한 기술사업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경제는 최근 이 교수와 세 차례 인터뷰를 가졌다.

-창발(創發)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창발은 남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해 새롭게 이뤄내는 것이다. 교수나 박사급 연구원이 독창적인 자기 연구를 기반으로 기술을 이전하거나 창업해 사회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우수 인재들이 의대와 약대 등으로 몰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핵심 인재들이 창업이나 기술사업화에 주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창발 정신을 외치게 된 계기는.

△2009년 건국대 생명공학과 교수 시절 논문을 잘 써서 ‘건대 학술대상’을 받았는데 당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자랑스러운 건국인상’을 받는 것을 보고 기술사업화에 대한 자극을 받았다. 그 뒤 서울대로 옮겨 창업도 했고 농생명·푸드테크 기업인을 키워내는 것에 역점을 두게 됐다.



-어떻게 기술사업화를 하자는 것인가.

△연구원들과 같이 네이처 리뷰 등에 SCI 논문도 290여편이나 쓰고 적지 않은 특허를 국내 식품·바이오제약사에 기술이전했다. 창업을 통해 식물 약용 성분을 건강식품이나 의약품 소재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석·박사 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포닥)에게 ‘논문만 쓰지 말고 끝까지 기술사업화를 책임져 사회에 기여하라’고 격려한다. 연구실에 박사과정 학생 20여명과 포닥 3명이 있는데 유학을 가지 않고 주도적으로 산학협력을 해서 투자를 받고 공동사업화도 하라고 권장한다. 연구원 출신 중 ‘더플랜잇’을 창업한 양재식 대표라든지 5~6명이 바이오나 식품회사를 창업해 남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많은 애로와 시행착오가 있었을 텐데.

△교수 임용·승진과 대학원생 졸업 요건이 SCI 논문 위주로만 돼 있어 기술이전 등 산학협력에 대한 연구원들의 관심이 부족했다. 연구를 산업에 적용한 사례도 별로 없어 애로도 많았다. 공동연구 중인 미국 MIT나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보면 프로젝트 위주의 교육을 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 자기 프로젝트가 있으면 스스로 질문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게 된다.

-요즘은 대학에서 교수와 연구원들의 창업이 좀 늘고 있지 않은가.

△사실 활발하지는 않으나 이공대·의대·농생대 등에서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사례가 좀 늘고 있다. 서울대 교수가 창업한 벤처 중 지난 2~3년 동안 강스템바이오텍·셀리드·천랩·비피도·셀레믹스·퀀타매트릭스 등이 코스닥에 상장했거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연구원이 창업한 수아랩은 나스닥 상장사에 인수합병(M&A)됐다. 밥스누도 상장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많은 교수들이 연구·교육·사업화의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교원 업적 평가나 국가 R&D 평가에서 지금도 논문 비중이 높은데.

△맞다. 지금도 논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일부는 특허나 기술이전 요소를 반영한다. 그렇지만 교원 평가에 창업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국가 R&D 과제는 논문·특허 등 정량 평가 위주인데 기술이전과 창업도 좀 더 비중 있게 다뤄졌으면 한다. 서울대와 KAIST 등 연구중심 대학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기술지주회사가 있는 대학이 70개 정도인데 대학들이 산학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연구자가 논문 쓰고 특허만 내는 관행이 고착화돼 정부 R&D 예산이 고비용·저효율 구조다. 심지어 대학과 출연연구소 모두 특허유지료가 기술이전료보다 더 많이 드는 게 현실이다.



-국제 공동연구도 많이 해왔는데 해외 실태는 어떤가.

△식물 유래 식·의약 소재에 대한 국제 공동연구를 해왔는데 해외 대학들은 주로 연구성과를 활용해 스타트업으로 키워 나간다. 기초연구에 치중하는 막스플랑크연구소조차 스타트업 혁신파크를 두고 있다. 칭화대나 베이징대 등 중국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보수적인 일본 대학조차 많이 변했다던데.


△도쿄대의 경우 법인화 이후 기술사업화에 박차를 가해 지난해 8월 기준 대학 기술지주회사에 335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교토대 등도 기술사업화에 적극적이다. 기업과 긴밀하게 파트너십을 맺고 개방형 혁신을 꾀하고 있다. 반면 서울대는 기술지주회사 자회사가 27개에 불과하다. 우리 대학이 절박감이나 위기의식·혁신이 좀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산학협력이나 융합 등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하지만 대학 주도의 산학협력이 아니라 기업이나 정부의 용역 위주로 많이 흘러왔다. 서울대나 KAIST조차 탁월한 기술사업화 성과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는 대학이 스타트업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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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 창업한 기업 중에는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자회사로 편입되지 않고 개인 벤처회사가 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저는 특허 확보 조건으로 지분 30%를 학교에 제공하고 창업했다. 그런데 다른 자회사들의 경우 기술지주회사가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외부 투자에 지장이 된다는 지적도 하더라. 기술지주회사도 자회사의 외부 투자 유치 과정에서 지분이 20% 이하로 낮아지면 5년 내 지분을 매도해야 해 M&A나 상장의 수혜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와 연구원이 창업해도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스타트업 M&A가 활발하다. 반면 우리는 스타트업의 혁신적 기술이나 인력에 대한 평가가 쉽지 않고 제대로 가치평가를 해주지도 않는다. 벤처·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인력·특허 빼가기 등을 우려한다. 대기업 CVC(지주회사 산하 벤처투자 자회사)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되 공정하게 M&A가 이뤄질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농생명·푸드테크가 미래 유망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코로나19와 고령화 추세로 건강에 대한 관심과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반려동물 시장도 급증세다. 식품산업에 인공지능(AI)과 바이오 기술을 결합해 맞춤형 건강식품과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도 속도가 붙었다. 대학과 출연연구소의 기술을 바탕으로 산업과 융합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수원=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농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건국대 생명공학과 교수로 식·의학 유전체를 연구하다가 2011년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로 옮겨 2012년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창발센터’를 설립하고 ‘밥스누’를 창업했다. 국내파로 식물 유래 바이오 소재 연구개발에서 세계적 선도 연구자로 꼽힌다. “굳이 유학을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계적 수준의 R&D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술사업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바이오 식·의약품 R&D 플랫폼 기업으로 우뚝 선 ‘밥스누’
“식물 유래 바이오 식·의약품 소재 개발을 위한 기초 융합연구에서 세계 선두권이라고 자부합니다.”

이기원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겸 밥스누 창업자는 7일 수원 광교에 있는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바이오 식·의약품 개발 분야 퍼스트무버(선도자)로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약콩 등 40여개의 식물에서 유익한 활성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 연구개발(R&D)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데이터를 AI로 분석하고 유전체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된 선도 R&D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기원 서울대 교수가 7일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약콩 등 40여개의 식물에서 유익한 활성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연구개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원=이호재기자이기원 서울대 교수가 7일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약콩 등 40여개의 식물에서 유익한 활성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연구개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원=이호재기자


그는 약콩·당귀·내복자·인삼 등 식물의 약용 성분을 두유, 건강기능식품, 탈모 방지 샴푸와 화장품에 적용했다. 근육 감소와 갱년기 치료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R&D 프로젝트마다 바이오 식·의약품 기업들의 투자를 각각 유치해 공동사업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해당 기업에서 로열티를 받거나 신설법인의 지분을 받는 식이다. 이 교수는 “약콩에서 단백질과 폴리페놀 등 약용 성분을 뽑아내 10여개의 건강식품과 화장품 등을 출시했고 의약품도 동물 임상을 마쳤다”며 “20여개의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밥스누 연구원들이 코로나19 사태에도 연구개발(R&D)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밥스누 연구원들이 코로나19 사태에도 연구개발(R&D)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약콩 등 40여개 식물서 유익한 활성물질 도출

20여개 산학협력 프로젝트 가동으로 시너지

밥스누는 서울대 평창캠퍼스에 현지 농민들을 참여시켜 두유공장과 약초 추출·발효 공장을 합작 운영하며 25명의 현지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농가들과도 약콩과 약초 계약재배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28명의 정규직을 두고 있으며 3년 전부터 연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교수는 “타미플루·아스피린·택솔처럼 식물에서 질병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있는 바이오 식·의약 소재 개발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초연구는 관악캠퍼스, 개발은 광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생산은 평창캠퍼스에서 각각 이뤄지는데 R&D 플랫폼을 구축해 대학의 연구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화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수원=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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