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기고] 폭염, 전기요금 그리고 ‘K통상’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낮은 전기료 통상마찰 단골메뉴

저유가 맞아 요금체계 개편하면

K통상 리더십도 한층 강화될 것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심신이 지쳐가는데 ‘역대급’ 폭염이 온다니 걱정이다. 여름철 누진제 완화로 부담이 줄기는 했지만 냉방비 폭탄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하다. 그래도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출마 소식이 반갑다. 대학에서 통상정책을 가르치는 필자에게는 특히 의미가 크다. 대학원에서 통상정책을 처음 접한 1995년은 김철수 당시 상공부 장관이 WTO 초대 사무총장직에 도전했다 아깝게 고배를 마신 직후였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영국·나이지리아·이집트 등 7개국 출신의 다른 후보들과 비교할 때 유 본부장의 경쟁력은 높다. 그가 당선되면 한국인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 WTO 사무총장이 탄생하게 된다.

1967년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에 가입한 한국은 그 후신인 WTO의 창립 멤버다. 유 본부장의 출사표처럼 한국은 WTO가 만든 통상규범과 교역질서 속에서 성장한 만큼 이제 ‘K통상’의 경험과 역량을 전 세계에 전파해 자유무역체제를 복원하는 데 이바지할 때다. 세계 7대 무역대국인 우리나라는 WTO에서 신화 그 자체다. 2012년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2018년 ‘30-50클럽’ 가입의 일등공신이 무역이다.


하지만 폭염과 전기요금이 이슈가 되는 여름철이면 K통상의 약점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논란이다. 미국이 2013년 이를 문제 삼아 WTO에 제소한 후 한국의 낮은 전기요금은 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에서 종종 지적하는 통상마찰의 단골 메뉴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철강·자동차·통신기기 등이 모두 대상이다. 경쟁국의 견제는 한국 전력산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투명성 차원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전은 총괄원가만 공개하고 주택용·산업용 등 용도별 원가는 공개하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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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으로 기업 경쟁력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무역 규범상 간접보조금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지분율이 24%를 넘는 한전이 적자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투자자국가간소송(ISD)’을 당할 수도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시기라 수입국이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을 빌미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결정구조는 경직적이고 농어민 보호와 서민생활 안정 등 정책적 고려에 따른 차등요금제가 도입돼 가격왜곡 효과가 크다. 왜곡된 가격체계는 과도한 대체소비를 부르기도 했다. 전기는 사용은 편리하지만 생산과정에서 전환손실이 크다. 한 논문은 한국이 2018년 기준 165조원어치의 에너지를 수입했는데 에너지 전환손실률이 24.3%에 달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환손실의 95%는 전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겼고 금액으로 치면 38조원이나 된다.

전기요금 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전력생산원가가 전기요금에 합리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문제점은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지적해왔다. 이번 여름은 그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연료비연동제와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할 수 있는 적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저유가 시대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K통상의 아킬레스건인 전기요금 문제를 해결하면 한국의 통상 리더십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올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최초의 여성 한국인 WTO 사무총장이 탄생한다면 마음만은 시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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