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자 측이 서울시의 진상규명 대책에 강한 의문을 표하며 추가적인 입장을 냈다. 이들은 그간 수행했던 비서 업무에 성희롱·성차별적 요소가 섞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반응엔 어폐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등 피해자지원단체는 16일 ‘그 분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그 분들의 이익이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비서의) 업무 성격은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시 관계자들은 “시장이 마라톤을 하는데 여성 비서가 오면 기록이 더 잘 나온다”며 주말 새벽에 출근하도록 요구했다. 또 이들은 “시장의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답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비서에게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역할을 암묵적, 명시적으로 요구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요구에 따라 비서가 행한 업무 중 성차별적, 성희롱적 요소가 섞여 있었다는 의미다.
지원단체는 서울시 관계자들이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서울시에 공식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몰랐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지원단체는 “시장실과 비서실은 (생략)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업무 환경이었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시장이 시장실에서 샤워할 때 옷장에 있는 속옷을 비서가 근처에 가져다 주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피해자는 (시장의 혈압 체크를) 가족이나 의료진이 하는 것이 맞다고 의견을 냈으나 여성 비서의 업무로 부여됐다”며 “박 전 시장은 ‘자기(피해자를 지칭)가 재면 내가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안 좋아’ 등의 성희롱적 발언도 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지원단체에 따르면 피해자는 2016년 1월부터 매 반기별 인사이동을 요청했다. 이는 조직문화 변화를 위해 승진을 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원칙을 천명한 박 시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관계자들이 ‘그런 걸 누가 만들었냐’, ‘비서실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며 피해자의 요청을 만류하거나 불승인했다”고 지원단체는 밝혔다. 이어 이들은 “2019년 7월 근무지를 이동하고 다시 비서 업무 요청이 왔을 때 피해자가 인사담당자에게 ‘성적 스캔들 등의 시선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고사하겠다’고도 얘기했으나 인사담당자는 문제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서실의 업무 특성과 피해자의 대응을 고려하면 관계자들이 충분히 ‘이상한 낌새’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원단체에 따르면 지난 8일 피해자의 고소 이후 일부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보좌관 등은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원단체는 이들이 피해자에게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고 ‘조언’”하거나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거야’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원단체는 “위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대책을 통해서는 본 사건을 제대로 규명할 수도, 할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앞서 서울시는 15일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의혹을 밝혀내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지원단체는 경찰에게 서울시청 6층에 있는 수사자료를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또 서울시, 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부에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호칭하는 이중적 태도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김재련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를 대리해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등에 진상규명을 요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