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다 보니 교과서적 차원의 지침이 된 지 오래이며 사회적 반향도 크지 않은 실정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권 차원의 동력을 갖지 않는 이상 추진이 힘든 상황으로, 중장기적으로는 명시적 지출 준칙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16일 한국조세정책학회가 주최한 제14차 조세정책 세미나에서는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선언적 의미의 지출 구조조정이 아닌 실효성 있는 지출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언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날 ‘재정 유지 가능성과 세입 확충 방향’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재정 투입을 위한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예산 편성 때마다 지출 구조조정을 병행하겠다고 반복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제대로 된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진 적이 거의 없고 그 실체도 매우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페이고 원칙 도입해야=김 교수는 이날 “현실적으로 유지 가능한 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설정하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재정지출 증가율 기준을 준칙화해 재정지출 규모를 엄격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수요 증가라는 구조적 요인,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따른 경제 충격이 겹치며 재정지출 압박이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중장기적 재정 관리 방안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방만한 공제·감면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김 교수는 “과세 정상화의 1차 과제로 비과세·감면제도 축소로 실효세율부터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홍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도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항시적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지출 계획을 짤 때 재원확보 방안도 함께 마련하도록 의무화하는 ‘페이고(paygo·수입지출균형원칙)’ 원칙 등을 우선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기에 재정 확대 여력이 충분하다는 시각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왔다.
◇증권거래세, 코리아 디스카운트 유발=홍기용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도국가의 35%가 채무 비율이 40% 정도일 때 발생했다는 통계가 있다”며 “국가재정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재원만 운영한다는 기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부채를 늘려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는 OECD 국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코로나19 국면에서의 경제 살리기는 규제 및 조세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주도가 아닌 민간주도에 역점을 두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두 번째 세션에서는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주식양도차익과세,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이 교수는 이날 증권거래세를 ‘징벌적 과세’라고 규정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도소득세 증가분으로 거래세 감소분을 상쇄하겠다는 시각을 유지할 것이라면 금융세제 선진화라는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며 “국가가 증권 투자를 도박으로 보고 하우스 유지비를 뜯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면 폐지가 불가하다면 일몰제로 명확한 로드맵이라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존의 대주주 양도소득세는 양도소득 과세 대상자 확대의 일환이었으니 당연히 이제 폐지되는 게 맞다”며 “다른 정책 목적이 있다면 명확히 밝히고, 문자 그대로 대주주 혹은 지배주주를 정의하고 그들에게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