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화원으로 김홍도와 어깨를 견주며 이름 날린 이인문(1745~1824 이후)의 ‘강산무진도’와 심사정(1707~1769)이 작고 1년 전에 그린 마지막 역작 ‘촉잔도권’을 한 자리에서 보기란, 어쩌면 이번 전시 이후로는 우리 평생 다시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박수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학예연구관)
총 길이 856㎝의 두루마리 그림 ‘강산무진도’와 818㎝의 ‘촉잔도권’이 나란히 전시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이 대작의 공통점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라는 사실이다. 이인문의 필력이 돋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우리 강산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등장해 이상향을 보여주며, 화면 양 끝에 추사 김정희의 인장이 찍혀있어 한때 그가 감상하고 소장했음을 알 수 있다. 집안 문제로 관직에 나가지 못한 문인화가 심사정은 굽이굽이 산세를 역동적이고도 치밀하게 구성했는데, 당나라 시인 이백 등 많은 예술가들이 소재로 한 촉(蜀)산천의 험난함은 벼슬길에 오르기까지의 어려움에 비유되곤 했다.
이들을 포함한 국보와 보물 83건 196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기획해 21일 개막하는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에서다. 최근 3년간 지정된 국보·보물 157건 중 부동산 유물인 건축 문화재와 이동이 어려운 문화재 일부를 제외한 유물이 총출동한 것으로, 국보와 보물 공개 전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기관과 개인, 사찰 등 총 34곳에서 일일이 빌려온 것이라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남다른 전시다.
특히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지정문화재 22건이 대여 전시로 선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강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람도’를 비롯해 조선 시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탁월하게 그렸던 김득신의 ‘풍속도 화첩’, 학예일치의 경지를 보여주는 추사 김정희의 ‘난맹첩’ 등이 전시된다. 이들 간송 소장품은 유물의 민감성을 고려해 3주 단위로 출품작이 교체된다. 예를 들어 개막과 함께 8월 11일까지는 김홍도의 ‘마상청앵도’가 전시되고 이어 8월12일~9월3일은 신윤복의 ‘미인도’, 이어 9월4~27일에는 김홍도의 과로도기도가 같은 자리에 걸린다. 탄은 이정의 ‘삼청첩’도 개막 초반에 ‘형란’ ‘연죽’에 이어 ‘노죽’ ‘고매’와 ‘우죽’ ‘난죽’이 순차적으로 전시된다. 왕족인 이정은 임진왜란에 참전해 왜적의 칼을 맞고 오른팔을 다친 후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급 소재인 금니(金泥)를 써서 사군자의 절개와 지조를 ‘빛나게’ 표현했다. ‘역대급’ 귀한 전시인 데다 이처럼 전시작이 교체되는 까닭에 전체 2개월 남짓한 관람기간에 두 번 이상 거듭 방문하는 엔(n)차 관람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는 문화재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해 마침내 국보로 승격된 옥산서원 소장의 ‘삼국사기’와 연세대 소장의 ‘삼국유사’로 시작된다. 이어 고려청자 등 뛰어난 공예술이 남긴 유물과 보물이 된 실경산수화·풍속화 등이 우리 문화재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국보·보물로 지정된 불교문화재의 위상도 만날 수 있다.
귀한 국보·보물이 오늘의 우리와 만나기까지는 수집가와 이를 계승한 소장자들의 공이 크다. 전시의 마지막에 간송 전형필, 혜전 송성문, 송암 이회림 등 이들 수집가를 위한 작은 공간도 마련됐다. 예술품 소장에 대한 인식이나 기부·기증에 대한 문화가 아직도 척박한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적적으로 수도권 국공립 박물관의 전시관람이 재개돼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통해 2시간 200명 이내로 관람이 가능하다. 9월27일까지.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