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22일, 그레이 데이비스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법에 서명했다. 골자는 연비 규제를 통한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 방출량 감축.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서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담지 않았다. 규제 권한을 넘겨받은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3년 후인 2005년, 승용차와 경트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감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2009년 생산분부터 온실가스를 22% 줄이고 2016년부터는 30% 감축해야 한다는 게 핵심.
자동차 회사들은 이 법의 통과를 막는 데 사활을 걸었으나 소용없었다. 500만 달러를 들인 캘리포니아 의회에 대한 입법 저지 로비도 수포로 돌아갔다. 민주당 소속인 데이비스 주지사가 주도한 배기가스 규제에 공화당 조지 부시(아들) 행정부는 내심 불만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1970년 제정된 ‘대기청정법(Clean Air Act)’에서 연방정부만 배기가스 규제권한을 갖고 어떤 주나 하급 기관은 별도 기준을 갖지 못하도록 명시했으나 캘리포니아주만큼은 예외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구만큼(미국 전체 인구의 12%) 자동차도 많았던 캘리포니아주는 지형도 분지여서 대기 오염이 심각했던 지역. 1960년 오염방지법 제정을 시작으로 1967년 CARB를 설립, 1970년 독자적인 규제법안을 만들고 1990년부터는 구체적인 배출기준(LEV·Low Emission Vehicle)을 적용해 왔다. 연방 기준보다 강한 캘리포니아주의 규제를 미국 내 15개 주가 따랐다. 연방정부는 못마땅했으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유럽과 일본 변수 때문. 미국 소비자들은 갈수록 일본산 저연비 자동차를 찾았다. 유럽까지 캘리포니아주보다 강한 규제를 시행해 배기가스 저감형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업체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캘리포니아의 기준을 연방 표준으로 삼으려 애썼다. 강화 일로를 걷던 캘리포니아주의 배기가스 기준은 공화당 출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맞아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9월 캘리포니아주의 자체 기준 제정 권한을 박탈한다고 밝혔다. 비용 상승을 유발해 일자리를 빼앗고 미국의 경쟁력을 해친다는 명분에서다.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23개 주 정부는 이에 반발해 연방을 상대로 권한 취소 철회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트럼프는 지구 환경 보전에 역행하는 바이러스’라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과연 어떤 결말이 나올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