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장을 통칭하는 갤러리(gallery)는 저택의 길게 뚫린 복도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갈레리아(galleria)에서 유래한 건축용어였다. 마찬가지로 건축용어인 로비(lobby)는 큰 건물의 현관에서 이어지는 칸막이 없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드나들 뿐 아니라 모이거나 쉴 수도 있는 공공(public)의 의미를 품고 있다. 이들 로비에는 건축물과 공간의 사연만큼이나 이야깃거리 많은 예술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미술 감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갤러리와 비슷하지만 로비에는 ‘문턱’이 없다. 미술과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조상인 기자가 연재할 ‘로비의 그림’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건축물의 로비에서 그간 눈여겨보지 않았던 명작들을 찾아내 평범했던 주변이 달리 보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앞 세종문화회관 1층 로비에는 백남준의 대규모 비디오 설치작품 2점이 놓여 있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왼쪽에 보이는 작품이 ‘월금(月琴)’, 오른쪽이 ‘첼로’다. 세종대로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에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백남준의 작품이라니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 작품의 연원은 지난 2000년 1월1일 0시, 밀레니엄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임진각에서 새천년을 맞이하는 ‘DMZ 퍼포먼스’ 행사의 한 축을 맡은 21세기 예술경영연구소는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당시 백남준은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기적적으로 회복한 상태였다. 비록 휠체어 신세를 지기는 했으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개인전을 준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준비할 때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없어 직접 방한하지 못하는 대신 작가는 손수 그린 스케치 2장을 한국으로 보냈다. 하나는 우리의 전통 현악기 ‘월금’이었다. 월금은 고구려 고분인 안악 3호군 벽화에 등장하고 조선의 궁중음악서 ‘악학궤범’에도 상세히 기록돼 있는 4줄짜리 원통형 악기이나 연주법이 전승되지 못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중국 악기 비파와 비슷한 듯하나 월금은 목이 더 길다. 또 하나는 첼로였다. 백남준은 일찍이 작곡을 전공했고 1963년 독일에서 연 첫 개인전의 제목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었을 정도로 음악이라는 소재를 중시했다. 이후 뉴욕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뮤즈’인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을 만났고 두 사람은 누드 퍼포먼스가 포함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공연을 음란행위로 본 뉴욕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이후 백남준은 ‘TV첼로’ 등 악기와 관련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백남준의 작품은 TV로 만든 외형보다 화면에 등장하는 영상이 핵심이다. ‘월금’과 ‘첼로’에 담긴 영상작품의 제목은 ‘호랑이는 살아있다’. 어느 날 백남준은 북한에서 제작된 동물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봤는데, 다른 맹수와의 대결에서 모조리 승리하는 호랑이의 모습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지도상의 한반도 모양이 호랑이를 상징하지만 백남준 스스로도 자신을 서구 한복판에 떨어진 호랑이라 비유하기도 했다. 유라시아를 지배해 동서양을 제패한 칭기즈칸을 종종 작품에 담았던 백남준은 시베리아와 북방아시아를 호령한 호랑이를 의미 있게 봤다. 이 영상은 밀레니엄의 시작을 알리며 백남준의 네 번째 위성아트로 세계 87개국에 생방송됐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기존의 세 작품이 전 지구적 관점에서 동서양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사선을 넘어 돌아온 백남준은 고국인 한반도의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지구촌 축제, 유럽의 거리 등이 등장하지만 백남준이 부르는 ‘금강에 살으리랏다’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하는 장면 등은 우리의 민족문제를 직시했다. 여기에 또 하나, 자신을 호랑이에 빗댄 그가 붙인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은 ‘백남준은 살아 있다’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원래 작품은 지금보다 컸다. 당시 제작을 맡았던 백남준의 유일한 한국인 엔지니어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는 “‘월금’은 높이 8.4m에 폭 2.7m, 첼로는 높이 7.8m에 폭 2.9m로 각기 가운데 부분에 빔 프로젝션을 투사하는 스크린을 갖고 있었다”면서 “야외전시 이후 실내에 둘 수 있을 정도로 규모를 축소해 높이 5.7m의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됐고 잠시나마 예술의전당 동편 공간에 전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밀레니엄을 가로지르는 한국인의 기상을 동서양 화합의 형태로 구현한 이 작품은 2001년 6월30일 이곳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 로비에 자리를 잡았다. 작품 옆 안내판에는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층층이 쌓인 TV 옆면은 프레스코화로 제작됐는데 이는 일찍이 동서양 미술의 접목을 시도했던 서양화가 진영선 고려대 명예교수의 작품이라 그의 이름이 함께 쓰여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명화 감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로비 곳곳에서 1970년대 한국의 단색조 추상회화를 일컫는 ‘단색화’ 대표작가들의 전성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백남준의 ‘첼로’가 있는 북측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단색화’를 선도한 원로화가 박서보의 ‘묘법 No. 24-77’을 만날 수 있다. 폭 259㎝, 높이 195㎝의 대형 캔버스에 바탕을 칠한 후 수행하듯 연필로 그은 작품이다. 한 층 더 올라가면 마찬가지로 단색화 작가인 최명영의 2001년작 ‘평면조건’을 마주하게 된다. 반대편 남측 계단 1층에는 유화 재료로 마치 먹 같은 번짐과 스밈을 구현한 작가 윤형근의 ‘다청(茶靑) 77’이 걸려 있고 그 한 층 위에는 마른 땅이 갈라진 듯한 물감 균열의 틈에서 정신적 흔적을 모색한 윤명로의 ‘77-1010’이 자리 잡고 있다. 1974년 새해 첫날 착공해 1978년 4월14일 개관한 세종문화회관 측이 당시 40대의 젊은 작가이던 화가들에게 직접 작품을 의뢰해 구입, 소장한 그림들이다. 안목은 탁월했다. 당시 몇백만원에 불과했던 이들의 작품은 201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기획된 ‘단색화’ 전시를 비롯해 굵직한 국내외 전시들을 계기로 세계 미술계에서의 위상이 드높아졌을 뿐 아니라 가격도 수십 배 이상 치솟았다.
박서보 화백의 경우 작품 한 점의 가격이 10억원 이상인 ‘밀리언달러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윤형근은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계기로 재조명받고 있다. 담담한 추상 작품이라 어수선한 마음을 비우기에도 좋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설레는 마음이나 공연을 보고 나오는 들뜬 마음을 가다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외에도 후기 단색화 작가로 불리는 김태호의 ‘형상-77’,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작가인 원로화가 김봉태의 ‘창문연작2’ 등도 눈 호강하기 좋은 작품들이다.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