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경제적 전투기 F-5의 탄생

1959년… 韓공군 주력으로 부상




1959년 7월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드워드 공군기지. 날렵하게 빠진 시험기체 ‘59-4987’이 솟아올랐다. 결과는 기대 이상. 재연소장치(afterburner)가 없어 출력이 약한 엔진으로도 첫 비행에서 초음속 기록을 세웠다. 55분간의 처녀비행을 마친 노스럽사의 수석 시험비행사 루 넬슨은 비행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훌륭했다. 시험기체가 마치 잘 교육받은 숙녀처럼 임무를 수행해냈다.’ 2년 10개월 뒤 케네디 행정부는 이 기체에 정식으로 제식 명칭을 붙였다. F-5A 프리덤 파이터(자유의 투사).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61년 전 오늘 첫선을 보였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 한국 공군의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성능 개량형인 F-5E/F 타이거 전투기는 아직도 우리 영공을 지키고 있다. 우리뿐 아니다. F-5 시리즈의 생산량은 모두 3,404대(파생형인 T-38 탈론 훈련기 1,158대 포함). 면허생산 또는 조립생산한 나라도 많다. 캐나다(230대)와 네덜란드(105대), 스페인(70대)이 초기형(F-5A/B)을 자국 공장에서 뽑았다. 한국도 1982년부터 F-5E/F 68대를 ‘제공호’라는 이름으로 조립생산했다. 대만은 우리보다 훨씬 이른 1972년부터 같은 기종을 308대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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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노스럽사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개념 설계에 착수했던 50년대 중반 기대했던 고객은 미 해군. 2차 세계대전에 쓰였던 1만~3만톤급 중소형 호위항공모함에 탑재할 함재기로 설계했다. 경량전투기이면서도 엔진을 2개 장착한 것도 함재기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초대형 항모만 유지한다는 미 해군의 방침에 따라 잠재시장을 잃어버린 노스럽사에 뜻밖의 고객이 찾아왔다. 근접지원용 항공기로 쓰겠다며 미 육군이 관심을 보인 것. 그러나 고정익 항공기를 육군이 운용할 수 없다는 공군의 반발로 이마저 날아갔다.

미 공군은 성능미달이라며 처음부터 등을 돌렸다. 미국은 결국 이 기체를 해외 판매용으로 삼아 2등급 동맹국에 보냈다. 해외 반응은 좋았다. 가격이 75만달러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낮은데다 운용 및 유지가 수월하고 짧은 선회 반경 등 운동성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외면했던 미 공군도 실제로는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F-5와 동일한 기체인 T-38 훈련기를 59년 동안 운용하며 8만여 조종사를 길러냈으니까. 미 공군은 T-38 교체에 들어갔다. 개량도 없이 F-5E/F를 주야장천 운용해온 우리는? 가늠하기 어렵다. 언제쯤 F-5E/F를 퇴역시킬 수 있을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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